항목 ID | GC00401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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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培敦病院 |
영어공식명칭 | Paton Memorial Hospital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정은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시 지역에 있었던 의료 기관.
[설립목적]
배돈병원은 호주선교회가 진주지역의 환자를 중심으로 기독교 전도 사업을 하기위해 1913년 11월 4일에 세워졌다.
[설립경위]
배돈병원의 건립은 호주선교회가 진주에 들어왔던 구한말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였는데, 1910년 호주의 건축가 켐프가 병원설계도를 작성하면서 활성화되었다. 당시의 공사업자는 일본인 토목기술자였으며 호주선교회가 세웠던 당시 옥봉리교회 옆에 근대식 병원으로 건립되었다. 병원이름은 호주장로교 총회가 선교구역 시찰자로 진주에 파견한 패튼(M. Paton) 목사의 한자명을 따서 지어졌다.
[변천]
1910년부터 공사착수를 시작하여 1911년 11월 건물이 완공될 무렵 원인 모를 화재로 공사가 지연되어, 2년 뒤에야 겨우 완공되었다. 당시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치과로 나누어져 있었고, 병상은 41대가 설비되었다.
해방 후에는 징용이나 징병에서 돌아온 해외 귀환동표들의 수용소 역할을 했던 적도 있었으며, 한국전쟁 때 미공군의 융단폭격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의의와 평가]
비록 배돈병원이 환자들에게 기독교를 믿게 만드는데 주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주시에 최초로 건립된 근대의료기관으로서 진주지역의 시민뿐만 아니라 경상남도 지역은 물론 전라도 등지에서도 많이 찾은 점으로 보아 당시 여러 지역 환자들의 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