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8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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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梅花-襄靖公 |
영어의미역 | Yangjeonggong Who Broke a Plum Branch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박기용 |
성격 | 지략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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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하경복|이방원 |
모티프 유형 | 목숨 걸고 자기 도리를 지킨 양정공 |
[정의]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전승되는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의 지략담.
[채록/수집상황]
1980년 8월 5일 류종목, 빈재황이 경상남도 진양군 수곡면 사곡리 석실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하성근(남, 당시 70세)이다. 그 후 1994년 하종갑이 진양문화원에서 편찬한 『진양민속지』에 정리하여 수록하였다.
[내용]
양정공 하경복은 기골이 장대하고 큰 목소리를 가진 장수였다.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이 되었을 때 조선에는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왕이 된 태종 이방원(李芳遠)[1367~1422]은 자기편이 아닌 무관을 모두 죽이려고, 두 편으로 구분해 놓고 제거하려 하였다.
양정공은 이를 눈치채고 순식간에 “국가가 혼란한데 장수를 죽이는 법이 어디 있는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태종의 귀에까지 들렸다. 태종은 궁금하여 그 소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신하가 사실을 알아보고 임금에게 사실대로 아뢰었다. 보고를 들은 임금은 그 사람을 끌어오게 했다. 그리고는 내심 ‘먼 곳의 소리가 예까지 들리는 걸 보니 예사 사람은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끌려온 양정공은 기개가 늠름하고 기골이 장대하여 큰 인물이 될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태종은 그를 용서하고 관직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어느 해는 이런 일이 있었다. 상림원(上林苑, 임금의 동산)에 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매화를 가꾸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실 태종이 매화를 좋아해서 많은 관리들이 온실을 만들고 매화를 키워 잘 보이려고 안달이 났던 것이다. 이를 본 양정공은 상림원에 들어가 매화를 꺾어버렸다.
이 사실이 곧 왕에게 알려졌고 태종은 화가 나서 양정공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붙잡혀 온 양정공에게 감히 왕이 아끼는 매화를 꺾은 까닭을 물었다. 양정공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답했다.
“전하, 매화는 시골 울타리에서도 흔하게 지천으로 피어 볼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런데 어인 까닭으로 전하께서는 매화를 그렇게 아끼십니까? 소인은 매화 가지를 꺾어 말채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비록 그렇다 해도 상감께 바칠 매화를 꺾어서는 아니 될 일이나 우리 같은 장수나 전하께서는 국방을 위해 전력을 다 바쳐야 할 것인데도 하잘 것 없는 매화를 가꾸느라 정신을 팔려서야 되겠습니까? 전하께서 매화에 마음을 쏟지 못하도록 제가 꺾었습니다. 통촉하옵소서.”
그제서야 태종은 양정공의 뜻을 알고 매화 감상을 중단하고 국방에 힘쓰게 되었으며, 그 뜻을 귀하게 여겨 벼슬을 높여주었다. 훗날 그가 죽자 시호를 ‘양정(襄靖)’이라고 내렸다.
[모티브 분석]
이 설화는 ‘목숨 걸고 자기 도리 지키기’ 유형에 속하는 민담이다. 이 설화의 기본 모티브는 양정공이 임금을 일깨웠다는 내용이다. 어지러운 시절 장수를 죽이려하자 직언을 하였던 것과 매화를 꺾음으로써 각자 본래의 임무에 충실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모티브의 근간을 이룬다.
[의의와 평가]
예로부터 진주 지역에는 인재가 많이 난다고 하였다. 양정공 하경복도 그런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설화는 진주에 올곧은 인물이 많았다는 것을 나타낸 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