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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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大闕 |
영어공식명칭 | David M. Lyall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강대욱 |
[정의]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선교사.
[경력]
라이올(Lyall)[?~1921] 목사는 1909년에 호주 빅토리아주 장로회 선교부의 후원으로 부인과 함께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광림학교 교장과 진주교회 당회장으로 시무하였다.
1911년 마산에 있는 리알중등학교(현 창신중고등학교 전신) 제2대 교장으로 부임하여 1920년까지 재임하였다. 이해 9월 퇴임 후 신병 치료를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 요양하던 중 1921년 8월 29일에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1909년 3월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고, 1914년 1월까지 5년 동안 경상남도 하동과 남해, 곤양 등지를 옮겨 다니며 활동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광림학교 교장과 진주교회 당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계급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과 봉건주의적 요소들에 대해 비판하였다. 또한 사회적으로 차별받던 백정들도 신앙과 사랑으로 함께 공통예배를 드릴 것을 권유하였고, 이러한 그의 활동은 경상남도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운동’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라이올 목사는 한국의 미래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남자 중등학교를 세우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노력으로 호주 빅토리아주 장로회에서 경상남도 마산에 중등학교 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노력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리알중등학교(현 창신중고등학교 전신)의 붉은 벽돌 교사(校舍)는 그의 이름을 따서 ‘D. M. Lyall 교사’라고 불렀다.
[의의와 평가]
라이올 목사는 일제강점기 수난을 겪고 있던 우리민족에게 종교적인 희망을 잃지 않게 했던 인물 중 한명이다. 인재양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는 등의 활동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여 종교인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엿보게 하는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