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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759
한자 屠獸組合
영어음역 Dosu johap
영어의미역 Butchers Associa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황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협동조합
설립연도/일시 1910년 10월연표보기
대표 최용규|장지필

[정의]

도수조합은 1910년 형평사가 형성되기 전 일종의 백정들의 협동조합

[역사적 배경]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백정은 천민이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신분제가 철폐되었으나, 여전히 백정들은 신분차별을 받았다. 게다가 일제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도축장의 경영이 일본인에게 넘어감으로써 생존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할 형편이었다.

[도수조합의 설립]

신분차별과 생존의 위협에 위기감을 느낀 백정들이 1910년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 줄 도수조합(도축조합) 설립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러한 움직은 경상남도의 도청소재지였던 진주에서 활발히 일어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신문 『경남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1910년 1월에 서울의 최용규(崔鎔圭)가 도수조합을 세우려고 진주에 내려와 장지필(張志弼)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 도수조합 설립 문제를 의논하였다고 한다. 장지필을 중심으로 집회와 조직 결성이 시도되었지만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움직임이 뿌리내리기에는 시대적 상황은 불합리했다.

[도수조합과 형평사]

도수조합 결성이 실패한 상황에서 1910년 3월 일본인들과 그들에 협력하는 조선 사람들이 함께 출자한 도수장이 옥봉에 세워졌는데, 훗날 이들의 조직체인 집성조합(集成組合)은 형평사와 대립하여 형평사원들을 박해하는 일제 부역 세력의 본산이 되기도 한다.

1910년의 백정운동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1924년 형성된 형평사의 핵심인물이 장지필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이후 형평사 조직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으며 도수조합 설립에 미온적이었던 백정들도 일제 자본 세력과의 경쟁에서 조직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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