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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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池-怪異- |
영어의미역 | Strange Bird That Appeared at Namji Pond; A |
이칭/별칭 | 남지이조(南池異鳥)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박기용 |
[정의]
김헌창(金憲昌)의 반란으로 인한 진주 지역 백성의 고통을 예고한 징조에 관한 설화.
[채록/수집상황]
진주시에서 1983년에 발행한 『내 고장의 전설』에 수록되었고, 이어서 1994년 진주문화원에서 발행한 『진주문화』16집에 수록되었다. 구술과 채록자는 알 수 없고, 사건을 나열하여 설명하는 방식의 설화 형태를 보인다.
[내용]
신라 헌강왕(憲康王) 14년(822) 김헌창은 아버지 김주원(金周元)이 부당하게 임금이 되지 못했음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김헌창은 웅천(지금의 공주)에서 거사를 하여 국호를 장안(長安)이라 하고,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하였다. 청주(菁州)[지금의 진주]에 있던 김헌창의 조직도 행동을 같이 하여 삽시간에 세력이 규합되었다. 반군 세력이 청주로 들어오자 청주도독 향영(向榮)은 몸을 피해 밀양으로 달아나 변변히 항거를 해보지 못하고 함락되고 말았다.
이 해 2월, 반란이 나기 한 달 전에 서라벌(徐羅伐)[지금의 경주]에는 눈이 다섯 자나 내리고 나무가 말라 죽는 이변이 일어났으며, 청주에서도 괴변이 일어났다. 태수가 집무하는 관아의 남지(南池)에 이상한 새[異鳥]가 나타났던 것이다. 몸길이는 다섯 자에 빛깔은 검었으며, 머리는 다섯 살 쯤 되는 어린 아이의 머리만 하였고, 주둥이는 다섯 치에 눈은 사람의 눈을 닮았는데 먹통이 다섯 되 들이 그릇 크기만 하였다.
이 괴상한 새는 나타난 지 사흘 만에 죽었는데, 이때 진주 사람들은 괴이한 일이 일어난 것을 보고 반란군 김헌창이 곧 패망할 징조라고 예언을 하였는데, 과연 얼마 후 김헌창은 패망하였다. 관군이 출동하여 반군은 모두 토벌되었고, 김헌창은 웅주성에서 자결하였다.
당시 굴자군(屈自郡)[지금의 의령]은 적지에 인접하여 있었으나 끝까지 반군에 맞서 대항하였으므로 난이 평정된 후 7년 동안 세금을 면제 받는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반군에게 점령당하여 변변히 항거하지 못한 진주의 백성들은 반군에게 시달리고 신라 조정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렸다.
[모티브 분석]
남지이조(南池異鳥) 설화의 기본 모티브는 ‘앞일을 예견하게 하는 징조’라는 유형의 민담이다. 아비가 왕이 되지 못하자 아들이 복수를 위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세상에 이상한 징조가 나타나고 얼마 후 패망한다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진주 지역이 역사의 현장에 휘말려 많은 고통을 겪었음을 짐작케 하는 설화로서 당시 역사의 한 부분을 전해주는 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