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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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澤堤 |
영어음역 | Gotaekje Reservoir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정섭 |
성격 | 수리시설|제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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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1832년 이전 |
둘레 | 270척[약 87m]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조선시대의 수리시설.
[개설]
『진주목읍지(晋州牧邑誌)』「제언(堤堰)조」에 고택제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3년마다 호구조사가 있었고, 『진주목읍지』도 그러한 제도에 근거 하여 작성되었는데 현재 1832년(순조 32)의 『진주목읍지』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보관되어 있고, 이를 근거로 추정할 때 적어도 1832년 이전에 제언(堤堰)인 고택제가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진주목읍지』에 따르면 고택제는 ‘축곡면에 있다(在杻谷面)’라고 되어 있는데, 진주목 축곡면은 현재의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 내평리, 유수리 지역에 해당이 되지만, 정확한 고택제의 위치는 알 수 없다.
[형태]
『진주목읍지』의 기록에 따르면 고택제는 ‘둘레가 270척으로 축곡면에 있으며 몽리답은 5석지기다(古澤堤 周二百七十尺 在杻谷面 蒙利沓五石地只)’라고 되어있다. 『진주목읍지』의 기록으로는 당시 37개의 제(堤)와 18개 보(洑) 중에서 큰 규모의 것은 둘레가 5,000척, 몽리답 규모가 170석지기가 넘는 제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에 비하여 고택제는 그 둘레와 몽리답의 규모의 기록으로 볼 때 다소 작은 제언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