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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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尙南道山林樹苗組合晋州支部 |
영어의미역 | Gyeongsangnam-do Forest Seedling Grower Cooperatives, Jinju Branch; The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성수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묘목조합 소속 진주지부.
[설립목적]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시행한 조림계획의 주요정책의 일환으로 조림에 필요한 묘목의 재배와 원활한 묘목거래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설립경위]
당시 경상남도 묘포장에서는 묘목을 재배하여 각 군에 나누어 주었는데, 민간에서도 1912년경부터 소나무와 뽕나무 묘목을 재배하여 묘포장의 부족분을 보충하고 있었다. 이후 묘목 재배가 점점 활성화되자 1915년에 진주에 묘목조합을 조직하고 만주방면까지 묘목을 수출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따라 묘목조합은 거의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상남도에서는 개인을 상대로 한 묘목 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1926년 3월에 진주묘목조합이라는 조합을 부활시켜 묘목에 관한 업무를 맡게 하였다.
[변천]
이후 사천과 동래·창원 등 각지에도 묘목조합이 설립되었고, 1928년도에는 도내업자를 중심으로 한 경상남도 종묘조합연합회를 조직하였으며, 당시 진주조합장이었던 모리마쓰[森松喜波]가 그 연합회장을 겸하게 되었다. 1931년에는 경상남도 삼림종묘조합으로 개편하고 각 군에 지부를 두었는데, 진주묘목조합은 그 지부라 개칭하여 진주와 문산 두 곳의 묘목재배자 12명으로 지부를 형성하였다.
[활동사항]
진주묘목조합에서는 묘목 생산에 주력하여 뽕나무 50만~1백만주, 소나무 9백만주, 상수리나무 50만주, 기타 잡묘 20만~30만주를 도내의 각 군에 배급했다. 이 때문에 남부지방에서 참엽수림을 선호하고, 활엽수림을 배척하는 풍조가 있었으나, 당국에서는 침엽수는 1대에 한해서 있는 것이고, 활엽수는 영구적인 보유력이 있다 하여 활엽수림을 권장하였으므로 조합에서도 이에 순응하게 되었다. 진주조합에서는 1928~9년의 2개년간 총독부 임업시험장의 위탁재배포를 설치한 바 있으며, 1930년 가을 진주에서 경상남북도 연합묘목품평회도 개최하였다. 1931년 경상남도 삼림종묘조합 진주지부가 설립된 후 묘목사업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처럼 20여년의 오랜 역사가 있는 진주지부는 경상남도 묘목재배의 선구자로서 식림사업에 크게 공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