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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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居列州 |
영어음역 | Geoyeolju |
이칭/별칭 | 거열성,청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편세영 |
[정의]
통일신라시대 지방제도인 9주의 하나.
[제정배경 및 목적]
신라 통일기의 지방제도를 9주 5소경제라 한다. 통일 이전에 신라는 전국을 5주로 나누어 지배하였으나, 삼국통일 이후에는 확대된 영토에 걸맞게 지방제도를 재편성했다.
[제정경위]
종래의 상주, 하주, 한산주, 수략주, 하서주 가운데 하주의 영역을 문무왕 5년(665)에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 동쪽 지역을 삽량주라고 하고 서쪽지역을 거열주라 하였다. 거열주의 남서쪽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전남지역에는 발라주가 설치되었다. 문무왕 11년에 충청도 지역에 소부리주와 탕정주가 설치되었다. 이로써 전국에 9주가 설치되었지만 문무왕 21년에 탕정주가 폐지되어 전국이 다시 8주로 되었다. 신문왕 5년(685)에 가서야 거열주를 나누어 완산주와 청주를 둠으로써 비로소 통일신라의 9주가 완비되었다. 9주의 명칭은 경덕왕 16년(757)에 한식으로 크게 한번 개정되었으며, 혜공왕 12년(776)에 다시 복구되었다가 9세기 중엽 이후에 경덕왕대의 개정지명이 다시 사용되었다.
[내용]
진주는 백제 근초고왕 24년(369)경부터 백제의 영토가 되어 백제가 멸망한 660년까지 약 300년 동안 그 통치를 받았으며, 이때는 명칭을 거열성(居列城)이라 하였다.
신라 문무왕 3년(663) 2월 신라 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이 백제의 거열성을 비롯한 여러 성을 점령함으로써 진주는 신라에 속해졌고, 명칭도 거열주로 되었다. 이후 신문왕 5년(685) 봄에는 9주를 정비하면서 거열주를 높여 청주(菁州)라 하고 대아찬 복세(福世)를 총관(摠管)으로 삼아 다스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