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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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康州 |
영어음역 | Gangju |
이칭/별칭 | 거열성,청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문옥상 |
[정의]
경상남도 진주의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 지방통치구역.
[개설]
강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列城)인데, 신라 문무왕 3년(663) 2월에 빼앗겨 신라 영토가 되었다. 이후 신문왕 5년(685)에 거열주를 뽑아내어 청주(菁州)를 설치하고 총관(摠管)을 두었다. 경덕왕 16년(757)에는 다시 전국의 지방조직을 9주, 5경으로 정비하고 명칭을 고쳤는데, 이때 청주를 강주(康州)로 개칭하였다.
[내용]
신라는 지금의 진주지방에 9주의 하나인 강주를 설치하고 총관(도독)을 두었으며, 속령으로 1주, 11군, 27현의 넓은 지역을 관할하면서 행정·군사·치안·조세 등의 통치역할을 수행하는 지방의 중심지로 진주가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당시의 관할구역을 정리하면, 남해군의 난포현(闌浦縣)·평산현(平山縣), 하동군의 성량현(省良縣)·악양현(嶽陽縣)·하읍현(河邑縣), 고성군의 문화량현(蚊火良縣)·사수현(泗水縣)·상선현(尙善縣), 함안군의 현무현(玄武縣)·의령현(宜寧縣), 거제군의 아주현(鵞洲縣)·명진현(溟珍縣)·남수현(南垂縣), 궐성군(闕城郡)의 단읍현(丹邑縣)·산음현(山陰縣), 천령군(天嶺郡)의 운봉현(雲峰縣)·이안현(利安縣), 거창군의 여선현(餘善縣)·함음현(咸陰縣), 고령군의 야로현(冶爐縣)·신복현(新復縣), 강양군(江陽郡)의 삼기현(三岐縣)·팔계현(八谿縣)·의상현(宜桑縣), 성산군(星山郡)의 사동화현(斯同火縣)·계자현(谿子縣)·도산현(都山縣)·신안현(新安縣)이었다.
[변천]
『고려사』 지리지 및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 등에는 신라 혜공왕 때 강주를 청주로 개칭하였다고 하지만, 『삼국사기』 혜공왕 2년(766)조에 강주라는 지명이 있으며, 또 『삼국사기』(권 제44 열전 제4)김양(金陽)조와 『동국여지승람』(권3 진주목) 명환(名宦)조의 김흔(金昕) 기사를 보면 강주가 나온다,
이와 같은 문헌기록을 근거하면 혜공왕이 강주를 청주로 개명하였다는 기사는 잘못된 것이며, 소성왕 때 청주로, 헌덕왕 때 강주라고 고쳤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러 지리지의 진주목 연혁에서 고려 태조 때 강주로 개명하였다는 기사도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며, 『대동지지(大東地志)』의 진주 연혁에 고려 태조 때 진주로 개명했다는 기사가 옳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