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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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天佑 |
영어음역 | Son Cheonu |
이칭/별칭 | 군필(君弼),무송(撫松)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경희 |
성격 | 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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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손광후(孫光後) |
어머니 | 진주유씨 |
아우 | 손천뢰 |
성별 | 남 |
몰년 | 1594년 |
본관 | 밀양(密陽) |
자 | 군필(君弼) |
호 | 무송(撫松) |
제향 | 대각서원[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사곡리 518번지] |
[정의]
조선 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군필(君弼), 호는 무송(撫松). 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손광후(孫光後)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다. 오곡(梧谷) 손수령(孫壽齡)의 후손이다.
[생애]
1531년(중종 26)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 이하리(離下里)에 살았다. 남명(南明)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고 처사(處士)로 지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조식이 세상을 떠나자 하응도(河應圖), 손천우(孫天祐), 유종지(柳宗智) 등과 함께 조식이 생전에 남긴 「사상례절요(士喪禮節要)」에 따라 장례를 치렀으며, 묘 아래에 여막을 짓고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다.
부모를 섬기는 데에도 효성이 지극하였다. 상 중에는 산소 곁에서 하루 세 번 음식을 올리고, 아무리 더워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당해서는 부모의 신위를 모시고 함경도까지 피난을 가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함경도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감복하여 손천우가 세상을 떠난 후 화조사(花鳥祠)라는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1594년(선조 27)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인근 선비들이 슬퍼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며, 1737년(영조 13)에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대각서원(大覺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