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가계]
본관은 함양(咸陽). 치암 박충좌(朴忠佐)의 후손이다.
[생애]
1585년(선조 18)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합포성(지금의 마산)까지 진격해 적과 싸웠다. 진주지역에서 활약하던 충용장군(忠勇將軍) 김덕령(金德齡)이 모함을 당하여 구속되자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에게 글을 올려서 김덕령 장군의 억울하고 원통함을 밝혔다. 이후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가 아우 박흥택(朴興宅)과 함께 전사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