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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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집필자 | 김성식 |
채록 시기/일시 | 1998년 5월 15일 - 「산타령」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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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원평지 마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성격 | 민요 |
토리 | 육자배기 토리 |
출현음 | 미, 라, 시, 도, 레 |
기능 구분 | 노동요 |
형식 구분 | 선후창 방식 |
가창자/시연자 | 황덕주[67세, 남, 앞소리]|오길현[63세, 남, 앞소리]|황삼주[59세, 남, 뒷소리]|김문선[60세, 남, 뒷소리]|최원석[58세, 남, 뒷소리]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부르는 논농사 민요.
[개설]
「산타령」은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부르는 논농사 민요이다 하루 중에 이 노래를 부르는 시점은 늦은 오후이다. 받는 소리 마지막이 “~ 산이로구나”로 끝나기 때문에 「산타령」이라고 한다. 노래의 분포 영역이 전라북도 뿐만 아니라 전라남도까지 포괄하는 전형적인 육자배기 토리의 전라도 민요이다.
[채록/수집 상황]
「산타령」은 1998년 5월 15일~16일에 마령면 원평지 마을에서 토박이인 황덕주[67세, 남, 앞소리]와 오길현[63세, 남, 앞소리], 황삼주[59세, 남, 뒷소리], 김문선[60세, 남, 뒷소리], 최원석[58세, 남, 뒷소리] 등으로부터 채록하였다. 앞소리의 가창자인 황덕주는 육자배기 토리에 능했고, 오길현은 기운찬 성음이 특징이었다.
평생을 농사일에만 종사한 황덕주는 근동에서 소문난 앞소리꾼이었던 그의 선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익혔다고 한다. 오길현은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한 바 있는데 마을의 토속 민요에 대한 애정이 대단히 깊다. 오길현은 소리하는 항성이 크고 우렁차며 매우 신명이 있다. 농요는 젊어서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으며, 마을 농요가 마지막으로 불리던 때를 그의 나이 스물 서너 살 때쯤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1960년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구성 및 형식]
「산타령」은 지역적으로 전라도 전역에 분포할 정도로 초 광역화된 민요이다. 명칭 또한 다양한데, 「산타령」 외에도 「산아지 타령」, 「자진산 타령」, 「장원질 소리」, 「흥아 소리」, 「진소리」 등이 그것이다.
「산타령」의 선율 형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미 라 시 도 레’의 미음계로 전형적인 전라도 육자배기 토리로 불린다. 따라서 미음은 떨고, 라음은 평으로 내며, 시음은 도음에서 꺾어 내림으로써 요성과 시김새가 풍부하고 발성이 묵직한 맛을 준다.
장단은 중머리, 혹은 세마치류 장단이 내재되어 있다. 대개 이런 노래는 메기는 소리를 중머리 장단으로 부르고, 받는 소리는 좀 더 흥겨운 세마치장단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내용]
「산타령」도 원평지 마을의 다른 민요와 마찬가지로 메기는 소리[앞소리]와 받는 소리[후렴]로 구성된 노래이다. 먼저 앞소리꾼이 “허어이 허어허 허야하아 헤야 뒤여 산이로고나”라고 메기면 나머지 일꾼들이 모두 함께 “허어이 허어허 허야하아 헤야 뒤여 산이로고나”라고 받는다. 이어서 앞소리꾼이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월출동령에 달 돋아온다”고 부르면 뒷소리꾼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허어이 허어허 허야하아 헤야 뒤여 산이로고나”를 반복한다. 이런 식으로 메기고 받는 구조로 가창되는데, 앞소리 사설은 “가면 가고 말면은 말지 네 잡놈 따라서 내 돌아간다”, “산이 높아야 골짝도 깊지 조그만한 여자 속이 얼마나 깊더냐”, “해당화 꽃 한 송이를 와자지끈 끊어다 마누라 머리에 꽂아나 보세”,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고 병들면 못 노느니라” 등이다.
[현황]
원평지 마을의 ‘논매는 소리’가 농경 현장에서 사라진 시기는 1970년대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제초제의 보급으로 더 이상 집단 김매기의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타령」을 부를 수 있는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 그 후에도 논매는 민요는 가창되었다. 1990년에 MBC 한국 민요 대전을 통해서 음반으로 녹음되었고, 전라북도립 국악원에서 녹음 및 보고서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또 7월 백중 술멕이 때는 여흥으로 간혹 부르곤 했다. 다만 현재는 앞소리를 메기는 사람들이 매우 고령인데다 건강까지 좋지 못하고, 또 「산타령」을 부를 기회가 거의 없어 더 이상의 자연 전승은 힘든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산타령」은 전라도 전역에서 불리는 민요이다. 이 노래를 부르는 연행 현장도 논농사의 김매기뿐만 아니라 장원질, 화전놀이, 물레질, 밭매기, 나무 등짐 하기 등 다양하며, 노동요에서 유희요까지 폭넓은 장르를 보인다. 또 가창 방식도 독창, 선후창, 교환창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된다. 심지어 이 노래는 「진도 아리랑」의 모태가 될 정도로 전라도 농경문화가 꽃피운 농민의 애창 민요라고 할만하다.
한편 「산타령」은 전라남도의 동북부 지역, 즉 곡성군·구례군·순천시 등 섬진강 유역과 지리산 연맥의 산간 지대에 집중되어 논매는 소리의 핵심적 위치에 놓여 있다. 상황이 이렇듯 「산타령」은 전파 범위가 초 광역적인데, 그것에 비해서 파생 및 변이형은 오히려 많지 않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