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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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郎君- |
이칭/별칭 | 「진주 낭군가」,「진주 난봉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동창리 |
집필자 | 김월덕 |
채록 시기/일시 | 2010년 - 「진주 낭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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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화산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동창리 |
성격 | 부녀요 |
가창자/시연자 | 이순자[여, 1943년생]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동창리에서 시집살이를 주제로 하여 전해 오는 부녀요.
[개설]
진안군 백운면에서 전승되는 「진주 낭군」은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아내가 남편이 첩을 집으로 데려온 것을 보고 자결하자 남편이 후회한다는 내용의 서사 민요이다. 일명 「진주 난봉가」 또는 「진주 낭군가」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진주 낭군」은 한국학 중앙 연구원 어문 생활 연구소와 안동 대학교 민속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 개정·증보 사업’ 전북 조사팀이 2010년 2월 1일 진안군 백운면 동창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이순자[여, 1943년생]로부터 채록하였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지원하는 한국 구비 문학 대계 웹 서비스[http://gubi.aks.ac.kr/web]를 통해서 조사 자료 텍스트와 연동되는 디지털 음원을 들을 수 있다.
[구성 및 형식]
「진주 낭군」은 부녀자들이 오랜 시간 지루하게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길쌈일 등을 하면서 주로 혼자서 불렀다.
[내용]
가난한 시집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는 아내가 시어머니가 시킨 대로 진주 남강에 빨래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니 난봉꾼인 남편이 기생첩을 데려와 희희낙락하면서 자신을 본체만체 하자 목을 매 자살한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이 “사랑 사랑 내 사랑아 기생첩은 삼 년이고 본댁 정은 백 년”이라고 하면서 아내가 허망하게 죽은 것을 탄식하며 후회한다.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살이 삼 년에 목매달아/ 시어머니 하신 말씀 얘야 아가 며누리 아가/ 진주 낭군이 오셨으니 진주 남강 빨래 가라/ 진주 남강 빨래 가니 돌도 좋고 물도나 좋네/ 검은 빨랜 검게 빨고 흰 빨래는 희게 빨아/ 집이라고 돌아오니 하늘같은 갓을 쓰고/ 용과 같은 말을 타고 기생첩을 옆에나 끼고 여영구영 하는구나/ 집이라고 돌아와서 목을 매여 죽었노라/ 진주 낭군 이 말 듣고 버선발로 뛰어나와/ 사랑 사랑 내 사랑아 기생첩은 삼 년이고/ 본댁 정은 백 년인데 어찌 이리 엉뚱망뚱 목을 매어 죽었는가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시집살이와 관련한 노래들은 부녀자들이 오랜 시간 지루하고 단조롭게 반복하는 노동을 하면서 주로 불렀다. 밤이 늦도록 삼을 삼거나 물레질을 한다거나 베를 짜는 등 주로 길쌈 노동을 할 때 많이 가창되었다.
[현황]
「진주 낭군」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지만 특히 영호남 지역에서 많은 분포를 보인다. 「진주 낭군」은 서사 민요 가운데서도 그리 긴 노래는 아니지만 가창자들이 고령화되고 현장에서 가창의 기회도 사라져 가면서 줄거리가 파편화되기도 하고 전승도 매우 약해졌다.
[의의와 평가]
「진주 낭군」은 대표적인 시집살이 노래 가운데 하나이다. 시어머니나 남편의 부당한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전통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었던 시집살이의 고충을 표현하고 있다. 시집에서 여성이 겪는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비판할 수 없었던 통제된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죽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저항적 말하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