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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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俊聖 |
이칭/별칭 | 황준성(黃俊性)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오정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오경택 |
[정의]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장.
[개설]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장으로 완도와 해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황준성(黃俊聖)[1878~1910]은 진안군 백운면 오정리에서 태어났다. 개항기 군인으로 참령에 이르렀으나 구식 군대가 해산되면서 집단 항의하는 데 동참하였다. 1907년 12월 체포된 후 평리원(平理院)에 의해 유배형 10년을 선고 받고 전라남도 완도에서 유배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완도 일대에서 의병들이 봉기하자 1909년 6월 유배지를 탈출한 후 의병장 강성택(姜成宅) 휘하의 의병들과 함께 무장하고 완도와 해남 일대에서 활발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추공엽(秋珙燁)·황두일(黃斗一) 등의 의병 부대와 합류한 후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로는 강성택과 추공엽 등을 부장으로 임명한 후, 부대원 150여 명을 이끌고 완도와 해남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및 일진 회원과 일본 헌병의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그러나 해남 대둔사(大屯寺)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기습을 받아 의병 부대는 해체되고 은거하던 중 1909년 12월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1910년 2월 광주 지방 재판소 목포 지부에서 교수형을 언도받은 후 대구 공소원과 고등법원에 항소하였지만 모두 기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6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