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7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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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金里-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봉곡 마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택구 |
현 소재지 | 황금리 선돌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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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유적 |
크기(높이,둘레) | 높이 80㎝, 너비 40㎝, 두께 30㎝[1호]|높이60㎝, 너비 25㎝, 두께 30㎝[2호]|높이 45㎝, 너비 20㎝, 두께 30㎝[[3호]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선돌.
[개설]
황금리 선돌은 마을 중앙의 당산나무 아래 세워진 3기의 선돌로 주민들에 의해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민간 신앙 유적이다. 당산나무에 거의 붙어 세워져 있으며, 길가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의 것[남]이 1호, 중앙이 2호, 오른쪽의 것[북]이 3호이다. 수구막이 혹은 액막이 구실을 하는 선돌로 보이며, 현재 특별한 의례 행위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위치]
황금리 선돌은 황금리 봉곡 저수지 방면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봉곡 마을로 들어가는 시멘트 길이 나오며, 이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면 마을 중앙, 도로의 왼편으로 당산나무가 있고, 그 나무의 아래로 세 기의 선돌이 줄지어 있다. 도로에서 봤을 때 가장 왼쪽이 1호, 중앙이 2호, 오른쪽의 것이 3호이다.
[형태]
보통 선돌은 그 크기나 형태에 따라 암 선돌, 숫 선돌로 구분되는데, 황금리 선돌은 당산나무 아래로 3기가 줄지어 서 있어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 생김새로 보았을 때 1호는 그 생김새가 울퉁 불퉁하고 끝부분이 돌출되어 있어 숫 선돌, 2호는 끝부분이 뾰족하게 생겨 숫 선돌, 3호는 네모 반듯하고 윗부분이 평평하며 고사리처럼 아이가 주먹을 쥔 모양을 하고 있어 암 선돌로 볼 수 있다. 3기 모두 암질은 화강암이며 1호는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2호와 3호는 자연석을 일부 다듬어 세워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의례]
당산나무 아래 자리하고 있는 황금리 선돌은 현재 특별한 의례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마을 주민들은 제일 큰 1호 선돌을 아빠 선돌, 2호는 엄마 선돌, 3호는 아기 선돌이라 부른다.
[현황]
황금리 선돌은 마을 가운데의 당산나무 아래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당산나무 주위를 보호하기 위해 바른 시멘트가 선돌 주위로도 발라져 있다. 특별한 의례행위나 관리가 되지 않아 선돌 표면에 이끼가 낀 곳도 있다.
[의의와 평가]
황금리 선돌은 마을의 당산나무 아래에 줄지어 3기가 세워져 있는데 마을 입구 길가의 양 옆으로 세워지는 일반적인 선돌과 달리, 입구가 아닌 당산나무 아래 줄지어 세워져 있는 점이 이채롭다. 마을 주민들도 막연히 아빠, 엄마, 아기 선돌로 부르며, 세워진 시기만을 알 뿐 어떠한 의미로 세워져 있는지는 알지 못하나 일제 강점기의 근대 유산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