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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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照林場戰鬪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대길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894년 11월 14일 - 상조림장 전투 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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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장소 | 상조림장 전투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
성격 | 전투 |
관련 인물/단체 | 동학 농민군|일본군|조선 관군 |
[정의]
1894년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일대에서 최초로 벌어진 동학 농민군과 일본군의 전투.
[경과]
1894년 11월 8일과 9일에 걸쳐 이루어진 전투 이후 동학 농민군이 용담을 함락시키자, 백목성태랑(白木誠太郞) 중위가 인솔하는 일본군이 조선 정부의 교도대와 함께 용담 지역으로 출진하였다. 이들은 곧바로 정천(程川)으로 진격하여 동학 농민군과 교전하였다. 11월 13일 밤에 동학 농민군은 현재의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에 있는 노래재[歌峙]에서 유숙한 후 다음 날 노래재를 넘어 상조림 아래 들판에 도착했다. 동학 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을 과소평가하였으나, 일본군이 갖춘 신식 무기의 위력을 경험하지 못한 동학 농민군과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기다리던 일본군과의 전투는 처음부터 승부가 정해진 상황이었다. 일본군의 신식 무기 앞에 그대로 노출된 동학 농민군은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패주하였다.
[결과]
상조림장 전투 결과 30여 명의 동학 농민군이 사살당하고, 20여 명이 사로잡혔다.이들 중 서도필(徐道弼)·박만호(朴萬浩)·이만실(李萬實)·조윤삼(趙允三)·박치팔(朴治八)·김윤일(金允一) 등 6명이 사살되었고, 나머지는 석방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상조림장 전투는 전라도 지역에서 동학 농민군과 일본군의 최초 전투로, 이 지역에서는 “흰 옷에 죽창과 단발식 화승총을 든 동학 농민군이 검정 군복에 장전식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무참히 패하여 당시 가을걷이를 한 들판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고 동학 농민군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노래재로 패주하였다.”라고 전해진다. 비록 상조림장 전투에서 동학 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의 신식 무기 앞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하였으나, 외세에 대한 저항 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