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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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세거|집성지 | 경주 이씨 세거지 - 잔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안천면 백화리 도라곡|백운면 노촌리|동향면 신송리| 주천면 용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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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이알평(李謁平) |
[정의]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연원]
경주 이씨는 신라의 6촌 중 양산촌(楊山村)의 촌장인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삼고, 신라 진골(眞骨) 출신 소판공(蘇判公)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본관 발상지인 양산촌이 뒤에 경주로 바뀌었기 때문에 본관을 경주라고 했으며, 경주의 옛 이름이 월성(月城)인 까닭에 월성 이씨(月城李氏)라고도 한다. 경주 이씨는 고려 후기에 크게 세력을 떨쳤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상신 8명, 대제학 3명, 호당 3명, 청백리 3명, 공신 11명, 장신 3명을 비롯하여 문과 급제자 178명을 배출하여 명문 거족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상서공파(尙書公派)의 문충공(文忠公)이항복(李恒福)[1556~1618]과 국당공파(菊堂公派) 이천(李蒨), 선조 때의 이름난 무신 충무공(忠武公)이수일(李守一)[1554~1632] 등이 유명하다.
[입향 경위]
진안에 우거하였던 경주 이씨로는 문효공이청의 후손인 이발이 철종 대 금산에서 안천면 백화리 도라곡으로 이거하였고, 검교 정승 이성중(李誠中)의 후손 이형이 전주에서 백운면 노촌리 하미치리로 이거하였다. 또한 백사이항복(李恒福)의 후손 이세원(李世元)이 인조 대 포천에서 동향면 신송리 상전으로, 충절공이존오(李存吾)의 후손 이조영(李兆榮)이 철종 대 대덕에서 주천면 용덕리로, 문충공이제현의 후손으로 도정을 지낸 이종섭(李鐘燮)이 1844(헌종 10) 남원에서 정천면 조림리로 이거하였다.
[현황]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 안천면 백화리 도라곡, 백운면 노촌리 하미치리, 동향면 신송리 상전, 주천면 용덕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경주 이씨는 2000년 기준으로 전국에 44만 6598호에 142만 4866명, 전라북도에 1만 852호에 3만 3724명, 진안에 250호에 713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진안군 주천면 명도봉 남쪽 등에 세장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