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T02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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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
집필자 | 현혜경 |
장사의 시작
김성원은 오현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일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 시내에는 신통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육지로 일자리를 찾아 출도했다고 한다. 작은 형도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 1960년대에는 제주에서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 육지로 취업하기 위해 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제주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학교를 중퇴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런 경우 부산에 있는 학생 모자를 만드는 곳에 취업을 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김성원도 모자점에서 처음으로 일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점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학생 모자는 ‘둘레가 빵빵하고 큰’ 학생 모자가 좋은 모자였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많은 돈이 모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른 일들을 찾아 10여 년의 떠돌이 생활을 하다 고향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온 고향 제주의 상황도 좋지 않아 돌아와도 할 게 없어 전전긍긍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때 친구가 과일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나도 한번 해보면 안 되겠나 싶어’ 친구에게 과일 장사에 대한 방법을 배우면서 청과물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나이 서른한 살(1971년)이었다. 청과물 소매를 시작하자 수입이 괜찮아졌다고 한다. 덕분에 오늘날까지 용담동 서문시장에서 청과물 소매 장사를 지속하게 되었고, 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던 자신과는 달리 2남2녀의 자식들을 모두 서울로 유학시켜 교육을 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서문시장에서의 청과물 장사
서문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청과물점과 식육점, 식당가들이다. 서문시장 내 식당들은 순대와 순대국밥으로 유명하다. 제주에 거주하는 일련의 작가군들이 시시때때로 모여 흥을 돋구는 곳들이기도 하다. 먹거리가 신선하고 독특하다 보니 주분들 뿐만 아니라 일련의 품목별 마니아들도 있다. 이런 서문시장의 시초는 1954년 제주시에서 오일시장이 관덕정과 서문로 근방에서 열리다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서 매일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 그 시초란다. 서문시장이 상설시장이 되기 전에 서문시장 자리에 큰 묘가 있었다고 한다. 보성 군수를 지낸 양보성 집안의 묘였기 때문에 양묘전이라 했던 것이 변음되어 양모전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그 땅의 일부일부를 사들여 서문상설 시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서문시장은 동문시장과 더불어 제주시에서 두 번째로 큰 매일시장이다. 그러나 화재에 시달렸던 동문시장과 달리 이제껏 대형사고 한 번 나지 않았던 시장이라고 한다. 이런 시장에서 김성원이 장사를 시작한 지도 30년이 넘어가고 있다.
서문시장의 변화
관덕정 인근에 시청과 경찰국, 법원이 있던 시절(80년대 후반 이전)은 서문시장의 황금기였다고 한다. 그러다 시청과, 법원, 경찰서가 이전하면서(1988년 즈음) 시장의 상권이 기울기 시작했다. 관공서의 존재 유무가 상권을 결정지었다. 그런대로 1970~1980년대까지는 장사가 잘 되었다. 김성원이 장사를 시작할 때(1970년대)만 해도 중앙로가 번창해서 괜찮았다. 외도 포구에서 아낙네들이 고기를 가져다 서문시장에서 팔 정도여서 동문시장 못지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인근에 생긴 진형마트니 E마트니 하는 대형 마트들이 생겨나면서 점점 장사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제는 제주시청 근방(제주시 이도동 인근)을 대학로라 부를 정도로 상권이 바뀌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편리성을 쫓는 것 같아 서문시장도 1998년에 제주시 도움으로 현대화 작업을 했다. 그런데 재래시장은 ‘구질구질한 멋, 아기자기한 멋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현대화로 지어놓으니까 그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한다. 아직까지 서문시장에서 돈을 못 번 상인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상인들이 모두 10년에서 30년 이상 정도 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30~40대 연령층은 거의 없고 전부 50대 이상 80대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70대 이상도 열 세 사람이나 될 정도이니, 장사의 진보성이나 대형 마트에 대한 위기 의식 속에서도 별반 극복 노력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서문시장의 인기 상품
서문시장 초기는 종합시장으로 유명했다. 그 중에서도 순대, 고춧가루, 정육점 등이 꽤 인기가 있었고 여전히 유명하다. 특히 멸치육수에 밥, 돼지고기, 국수, 두부, 대파, 깻가루, 고춧가루를 얹은 국밥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정육점마다 가득 걸려있는 신선한 육고기들이 이 맛을 증명한다. 1980년대 후반 즈음 1990년대 초반에는 가구점들이 집단으로 형성되었다. 지금 서문시장 가구점들은 가구에 관한 한 제주 시내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구점 거리를 지나 병문천과 서문시장 언저리에 밀집되어 있는 점집들도 용담동을 유명하게 만든 장소들이다.
상인들이 장수하는 시장
서문시장 상인 중에 최고령자는 87세이다. 서문시장에는 80세 이상이 둘, 75세 이상이 일곱, 70세 이상이 넷이나 되는 장수시장이다. 장사를 한 지가 40~50년은 족히 넘은 상인들이다. 대체로 포목, 쌀, 주단 같은 장사를 하고 있다. 환갑은 장수 측에도 끼지 못해 환갑잔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 칠십이나 되서야 칠순잔치를 한단다. 사소한 일거리라도 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일들을 그만두지 않는다. 때문인지 시장상인은 여성이 많다. 남성이 운영하는 점포는 극소수이다. 서문시장에서 최고령자는 서옥포목을 운영하고 있는 양서옥(87세)이다. 그 다음이 인선상회를 하는 강인선(85세)이다. 이들을 만나보니, 마치 30대가 장사를 하는 것 같은 활기찬 느낌을 받았다.
대형마트의 피해
대형 마트 이후 시장에서 생물에 대한 피해는 별로 없지만, 공산품은 꽤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서사로 지역에 진영마트가 생기면서 이전에 서문시장까지 오던 사람들이 이제는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장 상인들이 모두 고령자인데다, 젊었을 때 어느 정도 벌어놓은 재산 덕분에 굳이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생존권에 위협을 주니까 어떻게 해보자는 사람들도 없다. 그래도 판매를 늘려볼 요량으로 매년 세일 이벤트 행사를 벌인다. 작년 2005년에는 11월에는 ‘옵데강, 봅데강 대축제’ 행사를 했다고 한다. 유명 가수도 초대하고, 탤런트들도 초대해서 상품 판매를 증진시키기 위한 행사였다고 한다. 이 행사는 이벤트 회사와 계약해서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행사 비용은 융자를 받을 때도 있고 상인들이 부담을 할 때도 있단다. 행사 기간에는 다소 손님들이 증가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