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T0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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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
집필자 | 현혜경 |
용담1동의 김성원과 신옥년의 말에 의하면 1950년대까지 용담동의 생업은 주로 농업과 어업이었다고 한다. 서사라 근방이 전부 밭이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이 곳 사람들은 조, 보리, 콩, 팥, 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 이 중에 조, 보리가 대중이었고, ‘지슬’이라 불리는 감자 농사도 조금 지었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경작은 식량을 위한 것이어서 상품 작물인 유채농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옥년은 어릴 적 조, 보리 등을 수확하는 시기 전에는 점심을 싸들고 친구들과 함께 화북 쪽으로 감자나 고구마 이삭을 주우러 가기도 했다고 한다. 『용담동지(용담동지편찬위원회, 2001)』에는 ‘용담동 사람들은 바닷가에 인접한 평탄한 대지에서 농사를 짓고 바다밭을 일구며 살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1970, 80년대 오면서 농업과 어업 등 1차 산업 외의 2, 3차 산업에 종사하는 예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도 농업과 어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 지역 주민들의 주요한 생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토지 지목별 현황을 보니 많은 밭과 임야, 과수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농토 조건과 이미 대부분이 도심지로 편입된 상황임에도 한두기 근처에는 아직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다.
신옥년은 어릴 때(1930년대) 조나 보리 등을 수확할 때면 빗 같은 기구로 훑은 다음 말을 매어 돌리는 방아인 ‘방애’에다 조나 보리를 넣어 찧었다고 한다. 가끔 ‘도깨질(탈곡을 위해 곡식을 두드리는 농기구)’을 하는 경우들도 있었지만, 신옥년의 집에는 농사량이 많아 방애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방애를 돌리려면 말이 필요했는데, 말들은 각자의 집에서 데리고 와서 이용했다고 한다. 그런 말이 방애를 돌리다 오줌이나 똥을 싸려는 시늉을 하면 곡식들에 오물이 들어갈까 봐 부랴부랴 대야 닮은 통을 들고 말의 항문에 받쳐들고는 말을 따라다녀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탈곡기와 같은 농기계를 사용하여 농사에 이용하곤 한다니, 농업도 변화하는 생업 구조만큼 현대화되어 가는 추세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