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T0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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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
집필자 | 현혜경 |
용담1동에는 다른 마을에는 있는 산이나 오름이 없이 대개 평탄한 지형을 이루면서도 드물게 병문천과 한천이라는 두 개의 큰 하천을 끼고 있어 물과 관련된 지명이나 이야기가 많다. 병문천은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아라1동, 도남동 서쪽, 오라1동과 2동, 이도2동, 그리고 삼도1동과 용담1동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바다와 만나는 건천이다. 『증보탐라지』에는 ‘제주읍 용담리에 있으며 아래쪽은 해조(海潮)와 상통하여 밀물 때는 물이 나오다가 썰물 때면 마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2001년 12월 용담1동과 삼도1동의 경계가 되는 곳은 모두 복개되었다.
용담1동에 사는 신옥년은 이 병문천에 대한 많은 기억을 갖고 있었는데, 병문천은 건천임에도 불구하고 ‘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병문천은 삼도1동과 용담1동을 구분 짓는 하천인데, 건천이다 보니 평소 건천을 넘다들며 ‘선반물’ 식수를 공유하던 삼도리(현 제주시 삼도동) 사람들과 용담리 사람들은 비가 와서 ‘내(하천)’가 터질 때면 여지없이 마을 구분을 몸으로 체험해야 했다. 신옥년의 나이가 대여섯살 쯤(1930년대쯤) 되어 다리를 놓기 시작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모래짐도 나르고 공동 작업을 해서 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그 다리를 ‘세멘다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 다리 밑으로 웅덩이가 있고 하천 유량이 풍부해질 때는 웅덩이 물이 고여 아래로 떨어지면 그 물을 맞거나 목욕을 하거나 헤엄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신옥년의 말에 따르면 현재 태광식당 지경이 물엉장(물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물통을 형성했는 곳이었던 모양이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엉장 아래로는 당시 ‘무근성(묵은 성, 목 안, 성 안이라 불림, 현 제주시 삼도2동 일대)’으로 넘나드는 ‘배고픈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배고픈 다리’라고 듣게 된다면 당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배가 고픈 것’처럼 다리 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갔다고 해서 ‘배가 고픈 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배고픈 다리를 건너 무근성 사람들이 용담동의 선반물을 길러 다녔다고 한다. 그 배고픈 다리를 다음에는 ‘궤뭇동산’이라고 해서 엉장이 높은 지경이 다시 이어졌고 그 아래로 ‘선반물’이며 ‘한두기물’이며, ‘콩큰물’ 등 식수들로 쓰인 용천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선반물이나 한두기물은 무근성 사람들이나 삼도리 사람들도 모두 이용하던 식수였다고 한다. 삼도리에도 ‘통물’이라고 있었지만, 내가 터지고 선반물을 길러 다니기 어려운 때나 통물을 이용하고 거의 대부분은 ‘산물(한라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말함)’이라고 불린 선반물들을 이용했다고 한다. 선반물은 식수와 그 아래쪽으로는 야채를 씻는 공간을 그리고 다시 그 아래 쪽으로는 목욕과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이 공간에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대부분 광목 옷이여서 빨래 후 삶기 위해 집에서 솥을 들고 가 물가 근처에 솥을 걸고 옷을 삶아 말리기도 해서 빨래를 하러 갈 때면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곳에서 한데 어울려 ‘감자비누’라 불리는 세제로 세탁을 하고, 손이 상할 정도로 맨손으로 빨래를 했어도 그리운 기억이라고 한다.
선반물 동북쪽으로는 ‘코큰물(콩큰물)’이라고 있었는데, 절동산에 있던 해륜사에서 이 물에 콩을 담가 불리면서 콩나물을 길러 먹었기 때문에 콩을 큰(담근)물이라 해서 콩큰물이라고도 하고, 혹은 물고가 크고, 물고이는 곳이 마치 사람의 코와 비슷하다고 하여 ‘코큰물’이라 했다고도 한다. 예전에는 이 곳 ‘콩큰물’ 부근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며 은어, 숭어, 장어를 낚기도 했다고 한다.
선반물 아래로는 병문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포구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곳을 ‘버렝이깍(버렁개, 부러릿개, 벌랑포, 벌랑개라 불리기도 함)’이라 불렸다고 한다. 옛날 방어 체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았을 때는 연안 지대의 요새에 방호소 혹은 수전소가 설치되었는데, 이 곳에는 벌랑포 수전소(水戰所)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겨울철 북풍이 불면 모래와 자갈이 파도에 밀려와 포구를 메워버려서 포구 구실을 할 수 없어 버려진 개(浦)의 깍이어서 ‘버렝이 깍’이라고 한다고 한다. ‘깍’은 ‘끝’이란 뜻의 제주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