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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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奉蓋洞龍崗洞本鄕 |
영어음역 | Bonggae-dong Yonggang-dong Bonhyangdang |
영어의미역 | Shrine for the Tutelary Deity of Bonggae-dong and Yonggang-dong |
이칭/별칭 | 웃무드네 궤당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강동 176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하순애 |
성격 | 신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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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미상 |
둘레 | 냇가 암석 주변이므로 측정불가 |
면적 | 약 10㎡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강동 1768 |
소유자 | 건설교통부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강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개설]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형성될 때 함께 세워졌을 것이나 지금은 많이 통합되거나 소멸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지역의 전체 신당 중 약 44%가 본향당으로 여전히 본향당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봉개동 용강동 본향에서 모시는 신은 옥황상제의 막내딸로서 흔히 ‘궤당할망’이라고 한다. 궤당할망은 용강동 마을 사람들의 장적, 호적, 물고를 관장하는 본향신이다. 본풀이에 따르면 옥황상제의 막내 따님애기가 곡식 낱알을 까먹은 죄로 인간 세상에 귀양 와서 궤당에 좌정하였다고 한다. 당의 입구 쪽에는 ‘삼천백매’를 함께 모신다.
봉개동 용강동 본향에서는 아들 이름만 당에 올리는데, 딸이 다른 마을로 시집가게 되면 두 곳의 당신을 섬기기 어렵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고 추측된다. 용강의 옛 이름이 ‘웃무드네’이며, 봉개동 용강동 본향은 바위 틈새인 ‘궤’를 신의 좌정처로 관념하는 곳이기에 ‘웃무드네 궤당’이라고도 부른다.
[건립경위]
1592년(선조 25) 충주사람 완선생이 임진왜란을 피해 화북동에 거주하였으며 그의 손자 완응단이 350여 년 전 용강에 들어와 마을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때 신당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제주시 용강동 마을회관 맞은편, 동남 방향으로 난 농로를 따라가면 수령 250여 년의 아름드리 구실잣밤나무가 있고, 그 아래쪽 속칭 ‘금덩굴내’ 한가운데 있는 바위굴이 신당이다.
[형태]
봉개동 용강동 본향은 천변형, 신혈형 본향당의 형태를 띤다. 농로에서 신당이 있는 냇가까지 철제 계단이 놓여져 있으며, 큰 바위 아래 있는 작은 굴에 두 개의 제단이 마련된 독특한 형태의 신당이다.
[현황]
제일은 마을 포제 뒷날, 즉 길일인 초정일(初丁日)이다. 포제 제관들이 입제하여 마을에 금줄을 칠 때, 우선 신당에 가서 금줄을 치고 ‘어명’이란 도장을 찍어 봉인한다. 신당에는 새벽 첫 닭이 울기 전에 다니는데, 제물로는 메 두 그릇, 생선, 과일을 정성스레 준비한다.
용강리 주민들은 지금도 일년에 한 번 정도는 꼭 비념을 하는데, 용강리 출신 재일교포 중에는 제일에 맞추어 비념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