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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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履祚 |
영어음역 | Hong Ijo |
이칭/별칭 | 수백(綏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흡 |
[정의]
조선 후기 제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수백(綏伯). 아버지는 홍계택(洪啓澤)이며,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765년(영조 41)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내외직을 거쳐 1793년(정조 17) 5월 이휘조(李徽祚)의 후임으로 제주판관에 부임하였으며 1795년(정조 19) 9월에 물러났다. 홍이조가 부임할 때 사헌부장령 강봉서(姜鳳瑞)[1748~1823]가 당시 제주목사 이철운(李喆運)이 구호곡을 훔치고 백성을 학대하였다고 상소하니 조정에서는 제주목사를 탄핵하는 행위는 풍속과 교화에 관계된다고 하여 강봉서의 자리를 옮겼다.
또한 조정에서 강봉서의 상소를 확인하기 위하여 심낙수(沈樂洙)[1739~1799]를 제주위유안핵순무시재어사(濟州慰諭按覈巡撫試才御使)로 보내어 이철운을 파직시키고 귀양을 보냈다. 또한 심낙수에게 제주목사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여 관내를 순무(巡撫)하고 하급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인 시취(試取)를 실시하도록 하였다.
1794년(정조 18) 4월 대일관(大一觀)을 건립하고 윤음(綸音: 왕이 신하나 백성을 가르쳐 타이르는 내용을 담은 문서)과 유서(諭書: 관찰사나 절도사·방어사 등이 부임할 때 왕이 내리던 명령서), 어제책문(御製策文) 등을 봉안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제주 유생들의 시취(試取) 내용과 시문 등이 수록되어 되어 있는 『탐라빈흥록(耽羅賓興錄)』을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