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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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鎭南 |
영어음역 | Choe Jinmam |
이칭/별칭 | 자중(子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흡 |
[정의]
조선 중기 제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자중(子重). 아버지는 최동립(崔東岦)이다.
[활동사항]
1648년(인조 26)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654년(효종 5)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병조좌랑 재임 중인 1665년(현종 6) 6월에 제주판관에 부임하여 당시 가락천 동쪽에 있었던 충암묘(沖庵廟)를 장수당(藏修堂) 남쪽으로 옮기고 귤림서원(橘林書院)이라고 하였다.
1667년(현종 8) 8월에 제주판관에서 물러났다.『현종실록』1671년(현종 13) 12월조에 보면 “전 판관 최진남은 직책에 준하여 제수하였다. 전 판관 노정(盧錠)은 성의껏 백성을 구하였고, 최진남은 백성들에게 사랑을 남겼기 때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저술 및 작품]
충암묘를 옮기면서 지은 「충암묘이건기(沖庵廟移建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