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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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帝釋-告祀 |
영어음역 | Jeseok Halmang Gosa |
영어의미역 | Rites for the god of birth and fertility |
이칭/별칭 | 제석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현용준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풍농의 신인 제석에게 올리던 마을 고사.
[개설]
‘제석제’라고도 하는 제석할망 고사는 농업을 관장하고 보호하는 풍농 신 ‘제석’에게 올리는 고사였다. 여러 마을 지명에 ‘제석 동산’이란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각 마을마다 마을제로서 제석제를 지낸 듯하다.
제석제는 지역에 따라 조나 메밀을 파종한 직후, 혹은 파종 직전에 하거나, 7월 14일에 지냈다. 모두 파종한 종자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제석’에게 기원하는 의미가 컸다.
[연원 및 변천]
일제강점기까지 제주 지역에는 마을마다 공용 용인(하인)이 있었다고 한다. 제석할망 고사의 성격은 마을제였으나, 제를 준비하고 지내는 사람은 이 ‘용인’이었다. 해방 후 용인 제도가 없어지자 마을에서 고사를 담당할 사람을 정하여 지내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사라진 듯하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석할망 고사는 ‘제석 동산’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지냈다. 동산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제장은 대부분 높은 언덕에 있었다. 일부러 제단을 만든 곳은 포제단과 같은 형태였으나 보통은 언덕 위에 제물을 놓고 고사를 지냈다.
[절차]
향장이나 이장이 택일하여 용인에게 연락하면, 용인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제석제 제물을 받으러 왔다.”고 한다. 그러면 각 가정에서 밀과 메밀 등을 몇 되씩 내어준다.
제물은 메와 돌레떡, 생선, 감주 등이었는데, 용인이 모두 준비했다. 제물 준비가 끝나면 용인은 솥을 지고 제석 동산으로 올라간다. 그러고는 제장에 솥을 앉히고 그 자리에서 메밥을 지어 솥째 제단에 올린다.
제단 뒤에는 푸른 잎이 달린 1m 정도의 대에 백지 한 장을 달아서 꽂아 놓는데, 이를 제석기라고 했다.
제의는 분향, 배례, 헌작, 배례하고, 각 제물을 조금씩 덜어내어 제단 옆 흙에 부으면 끝났다. 마을 사람들은 제석기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제석제를 지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사를 드리고 남은 음식은 용인이 이장 등 동네 어른에게 나누어 주었다.
[현황]
현재 제주 지역에서 제석 동산이란 지명이 남아 있는 마을은 많으나 제석할망 고사를 지내는 마을은 한 군데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