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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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行敎 |
영어음역 | Yi Haenggy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보경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활동사항]
1827년(순조 27) 4월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거쳐 1827년(순조 27) 8월 현명원(玄明圓)의 반역 사건으로 파직된 심영석(沈英錫)[1767~?]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30년(순조 30) 3월에 떠났다.
1827년 광양에 있는 제주향교가 사면이 바람을 받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옮겨 세우는 것을 추진하던 중 관노 고상신(高相信)이 부지를 기증해 서문 밖 비룡지(飛龍池) 옆 현 위치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으로 옮겨 세우게 되었다.
1828년(순조 28) 대일관(大一觀)을 중수하였는데, 대일관은 심낙수(沈樂洙)[1739~1799] 제주목사 때에 지은 것으로, 어제윤음(御製綸音)이 봉안된 곳이었다. 1829년(순조 29)에는 홍화각(弘化閣)을 중수하였다.
1830년 제주판관 이의겸(李義謙)이 여색을 지나치게 탐하며 어리석다고 조정에 보고하여 파직하도록 하였으며, 도련촌 효자 신치득(愼致得)의 가문에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또한 재사(齋舍)를 중창하고 제복을 새롭게 마련하였다. 제주목사를 떠난 후 1831년 10월 전라도병마절도사에 부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830년(순조 30) 3월 제주향교에 이사상행교사학개건비(李使相行敎四學改建碑)가 에 세워졌고, 1830년(순조 30) 11월 제주 삼성혈에 사상이공행교거사비(李使相行敎去思碑)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