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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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在秀 |
영어음역 | Yi Jaesu |
이칭/별칭 | 신로(新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나영 |
[정의]
조선 후기 제주찰리겸위유어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신로(新老). 아버지는 판서 이문원(李文源)[1740~1794]이며, 어머니는 심숙(沈鏽)의 딸이다.
[활동사항]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813년(순조 13)의 제주민란(일명 양제해의 난)으로 흩어진 민심을 위로하기 위하여 홍문관응교 이재수를 제주찰리사 겸 위유어사로 파견하였다.
1814년(순조 14) 초에 부임하여 역적 양제해 부자를 죽이고 잔당을 해도(海島)로 유배시켰다. 제주목사 김수기(金守基)를 죄인 7명을 조사하지 않고 바로 죽인 죄목으로 파면시켰고, 제주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한 10개 조항을 시행하였다.
과거 시험을 실시하여 문과에 김영집(金英集)·김영업(金英業)·강계우(姜繼遇)·변경준(邊景俊) 등 4인을, 무과에 김예순(金禮純) 등 60여 인을 급제시켰다. 3월에는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노인에게 잔치를 베풀고 은휼을 베풀었다.
4월에는 전 정의현감 강성익(康聖翊)과 전 제주찰방 고명학(高鳴鶴) 등은 행실이 방정하며, 전 무신 겸 선전관 고우태(高遇泰)는 궁마(弓馬)에 익숙하며, 생원 오점(吳霑)은 글재주가 있으니 이들을 모두 수용(收用)하도록 하였다. 또 제주의 선비와 효자·열녀를 정표(旌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