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617 |
---|---|
한자 | 李由義 |
영어음역 | Yi Yuu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보경 |
[정의]
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활동사항]
1441년(세종 23) 식년시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으며, 1466년(세조 12) 3월에 문여량(文汝良)의 후임으로 감목사(監牧事)를 겸임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이유의가 제주목사에 부임할 때부터 제주에서는 안무사 겸 감목사가 혁파되고 진을 설치하여 병마수군절제사(兵馬水軍節制使)가 제주목사를 겸임하게 되었으며, 제주판관이 감목절제도위(監牧節制都尉)를 겸임하게 되었다.
제주목사 재임 중 제주판관 이인충(李仁忠)과 더불어 교수관 문소조(文紹祖) 감독 하에 낡은 제주향교를 중수하였고, 매년 봄과 가을에 말을 점검하는 장소로 삼기 위하여 1466년(세조 12) 영천천 서안에 영천관(靈泉館)을 건립하였다.
1468년(세조 14) 제주에 표류한 중국인 쇄경(鎖慶) 등 43명을 서울로 보내라는 승정원의 지시를 받았으며, 1469년(예종 1) 2월 부사직(副司直)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