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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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師模 |
영어음역 | Yu Samo |
이칭/별칭 | 자용(子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활동사항]
1787년(정조 11)에 실시한 대윤차(大輪次: 과거에 떨어진 사람에게 다시 보게 하던 시험)에서 표(表) 부분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문과의 초시·복시를 치루지 않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얻게 되었다.
1789년(정조 13) 식년시 문과에서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1796년(정조 20) 4월 제주목사 이우현(李禹鉉)의 후임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재임 중 윤음(綸音: 왕이 백성이나 신하에게 내리는 훈유의 문서)을 잘 받들어『소학(小學)』, 『오륜행실(五倫行實)』 등의 도서를 제주향교·대정향교·정의향교에 배포하였다.
또한 왕이 타는 말을 잘 선택하여 진상한 공으로 내구(內廐) 1필을 하사받았으며, 다 자란 암말을 육지에 내보내는 것을 막아줄 것을 조정에 요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1796년 대정현감 고한조(高漢祚)가 현성 동문 밖에 서당을 열고 열락재(悅樂齋) 현판을 걸 때, 유사모에게 글을 청하여 써주었다. 1797년(정조 21) 6월에 신병으로 제주목사를 사직하고 떠났다.
1803년(순조 3) 강계부사 재임 시절에는 삼정의 부담이 크므로 복정(卜定: 공물 이외에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으로 하여금 각 지방의 토산품을 강제로 바치게 하던 일)을 낮추어 달라고 조정에 요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