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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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憲洙 |
영어음역 | Yang Heonsu |
이칭/별칭 | 경보(敬甫),충장(忠莊)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낸 무신.
[가계]
본관은 남원. 자는 경보(敬甫). 아버지는 부사정을 역임한 양종임(梁鍾任)이다.
[활동사항]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1848년(헌종 14) 무과에 급제하였다. 1864년(고종 1) 2월 14일 제주목사에 임명되어 3월 정기원(鄭岐源)의 후임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있을 때 『훈민편(訓民篇)』을 저술하여 제주도민을 계도하였고, 1864년 북촌리 김여빈(金汝彬)의 처 정녀(貞女) 고씨에게 쌀과 고기를 하사하였으며, 삼성사에 제전(祭田)을 특별히 내렸다.
전 제주판관 백기호(白基虎)의 탐학을 엄하게 다스려 제주도민의 칭송을 받았다. 1865년(고종 2) 가을 태풍의 피해를 복구하고 조정에 쌀 1천 석을 요청하여 제주도민을 진휼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한 해를 더 재직하게 되었다. 1866년(고종 3) 8월에 승지에 임명되어 이임하였다.
1866년 어영청의 천총(千摠)으로 있을 때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1873년(고종 10) 어영대장에 임명되었다. 1876년(고종 13) 강화도 조약 당시에 개국을 반대하는 척화론을 끝까지 주장하였다. 1884년(고종 21)에 공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1887년(고종 24) 독련사가 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술에 『훈민편』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덕수리 산 59-3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67년(고종 4)에 세워진 사상양헌수영세불망비(使相梁憲洙永世不忘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3번지에 있다. 1870년(고종 7)에 세워진 목사 양공헌수 제폐비(牧使梁公憲洙除弊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455-1번지에 있다. 1911년 6월에 세워진 사상 양헌수 기념비(使相梁憲洙紀念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일동 1313번지[삼성로 22]에 있는 제주 삼성혈에 있다.
또한 건립 연대가 알려지지 않고 있는 양헌수 기념비가 두 개 있다. 사상 양공헌수 청덕휼민비(使相梁公憲洙淸德恤民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사상 양공헌수 선정비(使相梁公憲洙善政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