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166 |
---|---|
한자 | 宋啓弘 |
영어음역 | Song Gyeh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흡 |
성격 | 유생|민란인 |
---|---|
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 |
성별 | 남 |
생년 | 1840년(헌종 6) |
몰년 | 1896년(고종 33) |
본관 | 여산(礪山) |
[정의]
조선 말기 제주에서 민란을 일으킨 유생.
[활동사항]
1894년(고종 31) 송계홍(宋啓弘)은 수구적인 유생 이연보(李淵寶)와 강유석(姜瑜奭) 등과 함께 일본의 강압으로 시행되고 있던 갑오개혁에 반대하여 민란을 계획하고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그 영향이 전국적으로 파급되는 가운데 이연보는 난을 일으켰고, 제주목사는 이연보를 체포하여 신설된 제주경무청에 수감하였다. 이에 격분한 송계홍은 강유석과 함께 1895년 3월 반신제(反新制)·반개화·반일본을 표방하며 백성들과 함께 제주경무청에 난입하여 집기를 부수고 서류를 불태웠다.
1895년 4월 전 부사 김윤병(金潤柄)과 대정군수 채구석(蔡龜錫)[1850~1920]이 관군을 이끌고 이들 무리를 진압하였다. 송계홍은 의분에 못 이겨 사라봉에서 자결하였고, 강유석은 도망쳤다. 조정은 민란의 책임을 물어 제주관찰사 오경림(吳慶林)[1835~?]을 파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