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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134
한자 城隍堂
영어음역 Seonghwangdang
영어의미역 Shrine for Village Guardian
이칭/별칭 서낭당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1158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문무병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을 모셔 놓은 신당.

[개설]

성황당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절을 세 번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성황당은 성황신을 모신 신성한 장소로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으레 돌·나무·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으며, 성황당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성황당이 경계를 표시한다거나 또는 석전(石戰)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성황당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하다. 다른 말로는 서낭당이라고도 한다.

[연원]

우리나라에 성황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新城鎭)에 성황사(城隍祠)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라 한다. 그 뒤 고려에서는 각 주부현(州府縣)마다 성황을 두고 이를 극진히 위하였는데, 특히 전주서낭이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은 침입한 몽고병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성황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성황신에게 신호를 가봉하였던 일도 있었다.

수호신으로서의 성황은 조선시대도 널리 신앙되었는데, 조선시대의 성황은 국행(國行)성황과 민간에서의 성황으로 나누어진다. 국행성황에는 호국(護國)이라는 두 글자를 붙였다.

이성계(李成桂)는 즉위 후 여러 산천의 성황을 제사하였으며, 태종은 백악서낭(白岳서낭)과 송악서낭(松岳서낭)을 신도서낭(新都서낭)으로 모셨다. 그 밖의 조선시대 이름난 성황으로는 해주·괴산·현풍·양산·신성(新城)·밀양·전주·고성서낭 등이 있었다. 이러한 성황에서는 정기적인 제사뿐만 아니라, 국난이나 가뭄이 있을 때 성황제를 거행하여 국태민안을 기하고자 하였다.

[형태]

성황당의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서낭나무에 잡석을 어지러이 쌓아올린 누석단이 있고, 이 신수에 백지나 청색·홍색·백색·황색·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 둘째, 잡석을 난적한 누석단 형태, 셋째, 서낭나무에 백지나 5색 비단 헝겊 조각을 잡아맨 형태, 넷째,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다섯째 입석(立石) 형태 등이다.

이 다섯 가지 형태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첫 번째 형태이며, 두 번째 형태는 첫 번째 형태의 서낭나무가 퇴화되거나 길옆에 누석단이 먼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 형태는 수목신앙(樹木信仰)에 후기적으로 서낭나무에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매는 헌납속(獻納俗)이 복합되거나 또는 처음부터 서낭당의 신수 헌납속만 강조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신수에 당집이 복합된 네 번째 형태는 중부 내륙 산간 지역과 태백산맥 동쪽의 영동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다섯 번째 형태는 높이 120~200㎝ 안팎, 폭 90~120㎝ 가량의 자연석을 세워 놓는데 수구매기(水口막이)·돌서낭·선돌 등으로 부르며, 이것은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에서 간간이 발견된다.

[제주 지역의 성황당]

1. 형식

제주 지역의 성황당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제사를 받지 못하는 여귀(厲鬼)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비명횡사하거나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주인이 없는 외로운 혼령을 국가에서 제사 지내 주던 곳이다.

여제를 지내는 때는 봄에는 청명일, 가을에는 7월 보름, 겨울에는 10월 초하루에 세 차례 지내는데, 3일 전 성황당에서 발고제를 지낸 뒤 본제를 지내도록 정해져 있으며, 제를 지낼 때는 여단에 여귀의 신좌(神坐)를 단의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도록 설치하며 위패는 좌우로 나열한다.

2. 대상

위패를 왼쪽에 세우는 대상으로는 칼을 맞아 죽은 사람,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불에 타서 죽은 사람, 도둑을 만나 죽은 사람, 남에게 재물 때문에 핍박 받아 죽은 사람, 남에게 처첩을 강탈당하고 죽은 사람, 형을 받아 죽은 사람, 원통하게 죽은 사람, 천재지변으로 죽은 사람, 돌림병으로 죽은 사람 등이다.

위패를 오른쪽에 세우는 대상으로는 맹수에게 물려서 죽은 사람, 추위에 얼어 죽은 사람, 굶주려서 죽은 사람, 전쟁터에 나가 죽은 사람, 위급한 일을 당해서 몽매에 죽은 사람,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 죽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 등이다.

3. 관련기록

김정 제주목사가 저술한 『노봉문집』에는 「물에 빠져 죽은 사람에게 강신술을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축문이 보인다. ‘아! 원통한 혼이시어! 오히려 무슨 말을 하겠나이까. 관(官)이 비록 죽이지 않았더라도 그 죽음은 죽인 것과 같습니다.

아무 쓸모없는 나무로 배 만든 것을 처음부터 살피지 못하였습니다.(중략) 큰 바다는 끝이 없는데 어디서 침몰하셨습니까. 고아와 과부가 가슴을 치니 지극히 원통한 것을 풀 수 없습니다.

바람이여! 귀신이여! 하늘은 수심 띠고 바다는 시커먼데 육지 사람들의 목숨 아우름을 또한 알 수 없기에, 마음속에 측은하고 슬픈 것을 한잔 강신술에 따르는 것으로 대신하나이다’라는 내용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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