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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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樂淵 |
영어음역 | Baek Nak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분야 | 성씨·인물/전통시대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순만 |
[정의]
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낸 무신.
[가계]
본관은 수원(水源)이고, 자는 도원(道源)이다. 아버지는 동금(同禁) 백희수(白希洙)이고, 어머니는 윤민동(尹敏東)의 딸이다.
[활동사항]
1877년(고종 14) 1월 이희충(李熙忠) 후임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1881년(고종 18) 5월까지 임기를 훨씬 넘겨 4여 년이나 재임하였다. 부임하던 해 가을에 메뚜기 떼로 농사에 큰 피해가 발생하여 주민이 굶주리게 되자 조정에 급히 보고하여 진휼하였다. 이듬해인 1878년(고종 15)에도 흉년이 들자 호남의 사환미(社還米) 2천 석을 지원받았다.
또한 명월만호 김응전(金應銓), 전(前) 만호 김기호(金基鎬), 전(前) 제주판관 양제하(梁濟夏) 등으로부터 8백여 석에 달하는 진휼미를 받아 기민을 구제하였다. 이런 공로로 백성의 칭송을 받게 되어 1879년(고종 16) 윤 3월 임기가 만료되었지만 재임명되었다.
1877년과 1878년 연이은 흉년에 호남의 사환미를 보내 제주의 기민을 진휼할 수 있게 조정에 상주한 영의정 이최응(李最應)의 영세 불망비를 동헌 앞뜰에 세우게 하였다. 1878년 봄에 제주성 동문과 남문으로 들어오는 대로를 수축하였으며, 1879년에 사마재(司馬齋)를 설치하여 선비들이 모여 과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관덕정을 중창하기 위해 기금을 모으고 공장(工匠)을 소집하여 일을 시작하려는 차에 전출 명령이 내려져 떠나게 되었고, 관덕정 중창 공사는 후임으로 부임한 제주목사 박선양(朴善陽)이 완성하였다.
[상훈과 추모]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사상백공영세불망비(使相白公樂淵永世不忘婢)'가 세워져 있으며, 제주향교에도 1912년에 세워진 '목사백공흥학비(牧使白公樂淵興學碑)'가 있다. 1881년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세워진 '사상백공선정비(使相白公樂淵善政碑)'가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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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 생년 및 본관 수정 | 1) 본관 추가 : X -> 수원(水源) 2) 생년 수정 : 미상 -> 1828년 3) 가계 추가 : 본관은 수원(水源)이고, 자는 도원(道源)이다. 아버지는 제주목사를 지낸 백희수(白希洙)이고, 어머니는 윤민동(尹敏東)의 딸이다. |
2012.06.27 | 아버지 관직 수정 | 오 : 아버지는 제주목사를 지낸) 백희수(白希洙)이고, 어머니는 윤민동(尹敏東)의 딸이다. 정 : 아버지는 동금(同禁) 백희수(白希洙)이고, 어머니는 윤민동(尹敏東)의 딸이다. |
2012.06.27 | 참고문헌 추가 | 추가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