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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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緻 |
영어음역 | Kim Chi |
이칭/별칭 | 사정(士精),남봉(南峰),심곡(深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나영 |
[정의]
조선 중기 제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정(士精), 호는 남봉(南峰) 또는 심곡(深谷). 아버지는 부사 김시회(金時晦)이며, 영의정에 추층된 김시민(金時敏)[1554~1592]에게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1597년(선조 30)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세자시강원설서를 거쳐 1608년(선조 41)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으며, 전라도 흥덕현감을 지냈다.
이조좌랑 재임 중인 1609년(광해군 1) 3월 이전(李錪)의 후임으로 제주판관에 부임하고 1610년(광해군 2) 9월에 교체되어 떠났다. 제주판관 재임 중 제주의 행정 구역을 개편, 정리하였으며 관리 제도를 확립하는 데 힘썼다.
동서방리(東西坊里)를 설치하고 약정(約正)을 두었는데, 제주목은 중면·좌면·우면으로, 정의현은 중면·좌면·우면으로, 대정현은 좌면·우면으로 행정 구역을 나누어 면(面)에는 도약정(都約正) 1명과 약정(約正) 2명, 그리고 관리 3명을 두었다.
군대를 여섯 번(番)으로 편성하여 민폐를 없애는 데 공이 커서 민군(民軍) 모두가 환영하고 뒷날 선정비를 세워 그를 기리었다.
광해군 때 사복시정·이조참의·승정원동부승지·사헌부대사간을 거쳐 홍문관교리·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하고 병조참지에 올랐으나 독직 사건으로 파면되었다. 한때 이이첨(李爾瞻)[1560~1623]의 심복으로 이조에 있으면서 흉한 일을 벌였으며, 대사간이 되자 영창대군(永昌大君)[1606~1614] 살해 음모를 반대하는 정온(鄭蘊)[1569~1641]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의 학정이 날로 심해짐을 깨닫고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하였다. 인조반정이 있을 무렵 심기원(沈器遠)[?~1644]과 사전에 내통하여 벼슬길에 다시 올랐으나 대북파로 몰려 유배당하였다. 그 뒤 풀려나 동래부사를 거쳐 1625년(인조 3)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학문과 사상]
학문에 정진하여 경서(經書)를 통달하였고, 특히 점술을 연구하여 천문에 밝았다.
[저술과 작품]
저술에는 『남봉집(南峰集)』, 『심곡비결(深谷秘訣)』 등이 있다. 『남봉집』은 김치의 시문집이며 3권 1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본래 5책이었는데, 1책은 분실되고 나머지 4책은 아들 김득신(金得臣)이 3권 1책으로 재구성하였고 김득신의 발문이 있다.
권 1·2에 시 427수, 권 2에 고시 18수, 가(歌) 1편, 곡(曲) 2편, 서(序) 1편, 교서(敎書) 5편, 발 1편, 묘갈 1편, 권 3권은 부록으로 연보·유사(遺事)·묘비·과방(科榜)·수록(授祿)·기문록(記聞錄)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시는 김치가 수문어사 및 지방관으로 각 지방을 다니면서 읊은 시로써 한때 경향(京鄕)에서 애송되었다. 서(書)는 모두 가족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심곡비결』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책으로, 3권 5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음양오행을 통하여 사주·궁합·점성 등 인간의 길흉화복을 판단할 수 있는 비결을 수록한 책으로서 이 시기 역학의 발달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저술이다.
한시에는 제주에 있을 때에도 문장이 뛰어나 「한라산유산가(漢拏山遊山歌)」 등 을 많이 남겼는데 그 중 「등한라산절정시(登漢拏山絶頂詩)」는 오랫동안 도민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의 시는 방선문(訪仙門)에 음각되어 현재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