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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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源祚 |
영어음역 | Gu Wonj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흡 |
[정의]
조선 후기 제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활동사항]
1858년(철종 9) 10월 구재린(具載麟)의 후임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 1860년 2월 제주 암행어사 심동신(沈東臣)[1824~?]이 제주의 민정을 규찰하고 중앙 정부에 보고서를 올렸다. 제주목사 정우현(鄭愚鉉)·전 제주목사 임백능(任百能)[1795~?]·채동건(蔡東健)[1809~1880]·전 제주판관 구재린·전 대정현감 김기휴(金沂休)[1813~1895] 등은 그 죄상을 기록하여 문책하도록 보고하였다. 반면 제주판관 구원조·전 대정현감 강이진(姜履鎭)[1798~1865]·정의현감 강만식(康萬埴)[1803~1868] 등은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벼슬을 올려 주도록 보고하였다.
그러나 구원조는 1862년(철종 13) 11월 강제검(姜悌儉)[?~1863]·박흥열(朴興悅)·조만송(趙萬松)·김흥채(金興采)[?~1863] 등이 일으킨 1862년 제주민란(임술민란)을 진압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파직되었다. 1863년 1월 임술민란의 주모자 강제검과 김흥채는 체포되었고 2월에 효수(梟首)되었다.
[의의와 평가]
임술민란을 진압하지 못한 책임으로 파직되기는 했으나, 구원조는 역대 제주판관으로서 최장기 재임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