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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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汝霖 |
영어음역 | Go Yeori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일우 |
[정의]
고려 후기 제주 삼별초를 토벌한 무신.
[활동사항]
1268년(원종 9)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서 김준(金俊)의 휘하에 있었으나, 임연(林衍)이 김준을 제거할 때 김준의 편에 서지 않았다. 1270년(원종 11) 고려가 몽고와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삼별초가 봉기하여 근거지를 진도로 옮겨 대몽 항전을 계속하였다.
고려 조정이 진도에 있는 삼별초 토벌을 명하자 고여림은 1270년(원종 11) 8월 양동무(楊東茂)와 함께 수군을 거느리고 진도로 갔다. 그러나 삼별초에 의하여 장흥부 관군 20여 명이 죽고 재물과 곡식도 빼앗겼다.
1270년 11월 여몽연합군의 공격으로 진도가 함락당하자 삼별초는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고여림은 1270년에 군사 70명을 이끌고 영암부사 김수(金須)의 뒤를 이어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에서 고여림은 김수와 함께 삼별초의 제주도 진입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을 수축하였다.
삼별초가 파견한 이문경 부대가 제주의 서쪽 명월포에 상륙하여 동쪽으로 나아가 현재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자리 잡고 있던 동제원에 주둔하였다. 고여림은 1,000여 명의 관군과 함께 이문경 부대와 동제원 일대 송담천에서 격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