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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073
한자 姜遇伯
영어음역 Kang Ubaek
이칭/별칭 오백(五百)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란 주도자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성별
생년 1852년(철종 3)연표보기
몰년 1901년(고종 38)연표보기
본관 진주

[정의]

1901년에 일어난 제주민란의 주도자.

[개설]

일명 강오백(姜五百)이라고도 한다. 대정군 하원리에서 출생하였지만 주로 인근 월평리에 거주하였다. 아버지는 강시양(姜時陽)이다.

[활동사항]

1898년(고종 35) 대정군을 중심으로 방성칠(房星七)이 주도하여 일어난 민란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천주교 예비 신자로서 성당을 드나들었으나 나중에는 반천주교 운동에 앞장섰다.

1901년(고종 38) 제주민란 당시 월평리 이강(里綱)과 대정군 상무사(商務社) 사원을 맡을 만큼 향촌의 유력한 지위에 있었다. 1901년(고종 38) 1차 봉기에서는 서진장두(西陣狀頭) 오대현(吳大鉉)과 더불어 동진장두(東陣狀頭)로 민란을 지휘하였고, 2차 봉기에서는 동진장(東陣將)으로 민란을 지휘하였다.

1901년 6월 이재수·오대현·강봉헌·채구석 등과 함께 체포되었고, 7월 13일 창룡호 편으로 인천을 거쳐 서울로 압송되어 7월 27일부터 평리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민란인들에게 밀고하였으며 75명이나 되는 천주교도들을 살해하였다고 자백하였다. 10월 9일 최종 판결이 내려져 다음 날인 10월 1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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