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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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家神信仰 |
영어음역 | gasin sinang |
영어의미역 | worship of household spirits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현용준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울타리 안의 여러 곳을 관장하고 있는 신에 대한 신앙.
[개설]
지금은 제주 지역 농가의 대부분이 감귤 재배를 하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는 보리, 조, 콩, 팥 등 잡곡 재배를 했다. 감귤은 환금 작물로서 농가의 수입을 크게 올려놓아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가들도 대부분 현대식 건물로 변모하였다. 하지만 잡곡 재배를 할 당시의 제주 지역 민가는 대부분이 초가였다.
주로 대문에는 ‘일문전’, 곧 문전신(門前神)이 있었고, ‘상방(上房)’의 뒷문에는 뒷문신이 있었으며, 부엌인 ‘정지’에는 조왕신이 있었다. 또 ‘정주목’에는 주목정살지신이 있고, 눌왓에는 눌왓지신이 있었으며, 변소인 ‘통시’에는 칙시부인이라는 변소신이 있었다.
이외에도 울타리에는 울담내담지신이 있고, 집을 5방으로 지키는 오방토신이 있다. 집에서 굿을 할 때에는 이들 각 신에게 고사를 지내고, 유교식 조상 숭배 제의를 할 때에도 문전신과 조왕신에게는 따로 제의를 한다.
[가신의 무속적 유래]
제주 지역의 가신은 무속(巫俗)에서 유래했다. 그 유래는 무속신화인 「문전 본풀이」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문전 본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남선고을의 남선비와 여산고을의 여산부인이 부부가 되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을 하나둘 낳다 보니 일곱이나 되었다. 집안은 빈곤하여 살기 어려운데 자식이 많아 더욱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여산부인은 궁리 끝에 남편에게 곡식 장사를 할 것을 권유했다. 남편은 부인이 마련해 준 돈을 가지고 배를 탔다. 배는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가다 보니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닿았다.
오동고을에는 노일제대귀일의 딸이라는 간악한 여자가 살고 있었다.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남선비가 많은 돈을 가지고 장사를 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있는 아양 없는 아양을 다 떨었다.
“남선비님, 우리 내기 장기나 두며 놀면 어떻겠습니까?”
“그럽시다.”
이렇게 해서 한 판 두 판 장기를 두었는데, 승부는 뻔한 일이었다. 남선비는 가지고 간 돈을 전부 잃었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하는 수 없이 노일제대귀일의 딸을 작은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하지만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남편을 학대하였다. 남선비는 형편없는 초막에서 겨죽 단지를 옆에 끼고 겨죽을 떠먹으며 개를 쫓는 가련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세월이 지나자 눈까지 어두워졌다.
한편 여산부인은 남편을 장사 보내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들들에게 나무를 베어다 배를 만들라고 하고는 그 배를 타고 남편을 찾으러 나갔다.
배는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닿았다. 발 가는 대로 가다가 기장밭에 새를 쫓는 아이의 도움을 받아 남편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을 보니 천하에 가련한 신세가 되어 있었으며, 남편은 눈이 어두워 부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지나가는 길손인데, 날이 저물었으니 하룻밤 재워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남선비는 작은 부인의 야단 소리가 무서워 거절했으나 여산부인은 사정사정한 끝에 겨우 부엌을 빌 수 있었다. 부엌에서 우선 솥뚜껑을 열어보니 겨죽이 눌어 있지 않겠는가. 여산부인은 그 솥을 몇 번이고 씻어 쌀밥을 지어 한 상 올렸다. 남선비는 밥을 한 술 떠먹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도 옛날에는 이런 밥을 먹어보았지만 이런 신세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남선고을 남선비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여산부인은 기가 막혀 말했다.
“나를 모르겠습니까? 나는 여산부인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부부는 손목을 부여잡고 만단정화를 나누었다. 마침 노일제대귀일의 딸이 치맛자락에 겨 한 줌을 싸들고 들어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 야단부터 쳤다. 남편이 큰부인이 왔다고 이르자,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어조를 바꾸며 말했다.
“아이고, 형님, 유월 염천에 오자고 하니 얼마나 더웠겠습니까? 우리 여기 연못에 가서 목욕이나 하고 저녁을 지어 먹으면 어떻겠습니까?”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갖은 아양을 다 떨었고, 이에 속은 여산부인은 작은 부인을 따라 연못에 갔다. 연못에 다다른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옷을 벗으면 등목을 해주겠다고 하더니 여산부인의 등에 물을 두어 번 끼얹고는 몸을 미는 척하다가 물 속으로 밀어 넣어서 죽여 버렸다.
그리고 여산부인의 옷으로 갈아입고 집에 돌아와 큰 부인인 척하고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행실이 고약하여 죽여버리고 왔다고 말하였다. 눈이 어두운 남편은 그저 그녀가 큰 부인인 줄로만 알았다.
이후 이들 부부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마중을 나간 아들들 중 위로 여섯 형제는 자기의 부모라 믿는데, 맨 아래의 똑똑한 녹디성인은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가 맞으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아니라고 했다.
녹디성인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하는 행위를 보면 알 것이라 형들에게 말했다. 정말로 어머니는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들어가려 하고, 집에 들어와 밥상을 차리는데도 상이 모조리 뒤바뀌었다. 아들들은 자신들의 어머니가 아님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에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이 아들들을 없애버려야겠다며 간계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방 네 구석을 뱅뱅 돌며 “아야, 배여! 아야 배여!” 하며 배 아픈 시늉을 해댔다. 그러더니 눈이 먼 남편이 걱정하자 점쟁이한테 가서 점을 치고 오라고 한다.
순진한 남편이 점을 치러 집을 나서자 첩은 울타리를 넘어 지름길로 먼저 가서 점쟁이인 척하고 “아들 일곱 형제의 간을 내어 먹어야 신병이 낫겠다”는 점괘를 내린다. 점을 두 번이나 반복하고도 같은 점괘가 나온다.
첩은 처음에는 차마 아들의 간을 어떻게 먹느냐며 싫은 척하다가 “내가 한 배에 아들 세 쌍둥이씩 세 번만 낳으면 아들이야 아홉 형제가 될 것이 아니냐?”고 남편을 달래는 바람에 그럴 듯한 말이라며 아버지는 아들들을 죽일 칼을 갈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 챈 막내아들이 아버지에게 가서 “제가 형님 여섯의 간을 내어올 터이니 약효가 있거든 아버지는 저의 간만 내십시오.” 하고 형들을 데리고 깊은 산중으로 가다가 돼지가 새끼 여섯 마리를 데리고 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새끼 돼지 여섯 마리의 간을 내어 어머니에게 바쳤다.
아픈 어머니는 간을 먹는 척만 하면서 입술에 피만 약간씩 바르며 이부자리 밑으로 숨겼다. 이것을 문틈으로 본 막내아들은 이부자리를 걷어치워 간 여섯을 들고 지붕 위에 올라가 만천하에 그녀의 간계를 폭로한다.
이것을 본 아버지는 면목이 없어 어두운 눈에 ‘올레’로 내닫다가 정낭에 걸려 죽어 ‘정주목신’ ‘정낭신’이 되고,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도망갈 길이 없자 방의 벽을 뜯어 통시(변소)에 내달아 목매어 죽어 변소의 신이 되었다.
아들 일곱 형제는 서천 꽃밭에 들어가 환생꽃을 얻어다가 연못에 빠져 죽은 어머니를 살려다 부엌의 신인 조왕으로 앉히고, 큰형은 집을 동방으로 지키는 청대장군(靑大將軍)이, 둘째형은 집을 서방에서 지키는 백대장군이, 셋째형은 집을 남방으로 지키는 적대장군이 되었다.
또한 넷째형은 집을 북쪽으로 지키는 흑대장군이, 다섯째 형은 집을 중앙에서 지키는 황대장군이, 여섯째 형은 ‘뒷문전신’이 되었고, 똑똑한 막내 동생은 일문전(삼방의 앞쪽 문신)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신화는 통시(변소)와 정지(부엌)를 멀리 떨어지게 만드는 이유가 처와 첩의 불화 관계를 설명하면서 위생 유지를 뒷받침하고 있고, 유교식 조상 숭배의 제사나 명절 때에 ‘문전제(門前祭)’와 조왕고사를 약식으로 지내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본래 무속에서 집안을 지켜주는 중요한 신이니만큼 조상 숭배 제의를 유교식으로 바꾸면서도 이 신에 대한 제의만큼은 없앨 수 없다 하여 지금도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