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1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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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益山彌勒寺次金上舍宋御史韻 |
영어공식명칭 | Iksan Mireuksaeseo Kim Sangsa Deukji, Song Eosa Sanghyeonui Sie Chaunhada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인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639년 - 익산 미륵사지 석탑 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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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33년 - 윤두수 출생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01년 - 윤두수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635년 - 「익산 미륵사에서 김 상사 득지, 송 어사 상현의 시에 차운하다」 『오음유고』에 수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2년 12월 20일 -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보 제11호 지정 |
배경 지역 | 익산 미륵사지 석탑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
성격 | 한시 |
작가 | 윤두수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윤두수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미륵사에서 김득지와 송상현의 시에 차운한 한시.
[개설]
「익산 미륵사에서 김 상사 득지, 송 어사 상현의 시에 차운하다」는 윤두수(尹斗壽)[1533~1601]가 익산 미륵사(彌勒寺)에서 김득지(金得地)[1531~?], 송상현(宋象賢)[1551~1592]과 시를 나누며 느낀 소회를 읊은 시이다. 윤두수는 본관은 해평(海平), 호는 오음(梧陰), 자는 자앙(子仰)이다. 155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한 이후 영의정에까지 이르는 등 여러 직책을 두루 역임하였다. 윤근수(尹根壽)[1537~1616]가 동생이며, 이황(李滉)[1501~1570]·이중호(李仲虎)[1512~1554]의 문인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1592]과 정유재란(丁酉再亂)[1597]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전란과 민심을 수습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윤두수의 문집으로는 『오음유고(梧陰遺稿)』[1635]가 있다.
시의 배경이 되는 미륵사(彌勒寺)는 백제 무왕(武王)[?~641] 때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창건된 절이다. 현재 절은 폐사되어 창건 당시 사찰의 규모는 알기 어렵고, 절터 안에 당간지주(幢竿支柱)와 국보 제11호로 지정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만 남아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 전하는 석탑 중 가장 큰 규모이자 가장 오래된 탑이기도 하다. 미륵사는 세 개의 탑과 세 개의 금당이 배치된 독특한 양식의 사찰로서, 백제 청년 서동(薯童)과 신라의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도 유명하다.
[구성]
「익산 미륵사에서 김 상사 득지, 송 어사 상현의 시에 차운하다」는 희(稀), 의(衣), 휘(輝), 비(肥) 등의 운자를 쓰는 두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시는 나이 들어 머나먼 남쪽 지방에서 오랜 지기를 만난 반가운 마음과 옛 친구에 대한 예찬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시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나긴 시간 동안 친한 벗들과 좋은 시를 주고받으며 느끼는 즐거움과 흐뭇함이 잘 드러난다.
[내용]
「익산 미륵사에서 김 상사 득지, 송 어사 상현의 시에 차운하다[益山 彌勒寺金上舍得地宋御史象賢韻]」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로여차노선지(頭顱如此老先知)[머리가 나같이 되면 늙어 가는 것을 먼저 알게 되니]
호외상봉고구희(湖外相逢故舊稀)[호외에서 만날 오랜 친구들 드물어졌네]
계서가기비초차(鷄黍佳期非草次)[대접하겠다는 좋은 기약 초가에서가 아니라]
석문사일파태의(石門斜日破苔衣)[석문의 석양 속에서 이끼를 밟네]
인여봉전풍취맥(人如蓬轉風吹陌)[사람은 들판의 세찬 바람에 흩날리는 쑥대 같은데]
주사단성면발휘(酒似丹成面發輝)[술은 단약 같아서 얼굴에 빛이 나네]
구의지군전승아(久矣知君全勝我)[오래전부터 그대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 알았으니]
충연유도각신비(充然有道覺身肥)[도가 충만해져 몸에 살이 올랐음을 깨달았네]
설욕소시초사지(雪欲消時草似知)[눈 녹을 때가 되자 풀도 아는 듯한데]
춘선도처안환희(春先到處雁還稀)[봄이 먼저 온 곳에 기별이 드무네]
공래자상라시탑(共來恣賞羅時塔)[함께 와서 신라 때의 탑을 마음껏 감상하고]
상견혐가금루의(相見嫌歌金縷衣)[서로 보면서 금루의를 부르는 것을 꺼리네]
기어종조유락설(綺語終朝猶落屑)[좋은 시구는 아침 내내 톱밥이 쏟아지는 것 같고]
불등중야갱유휘(佛燈中夜更留輝)[산사의 등불은 한밤중에도 다시 빛을 발하네]
타년기취금시회(他年記取今時會)[훗날 오늘의 만남을 기억하리니]
춘일춘반목숙비(春日春盤苜蓿肥)[봄날 봄 밥상에 채소가 풍성하네]
[특징]
시의 제목에 나오는 김득지는 1558년 문과에 윤두수와 함께 급제한 문인이다. 송상현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의 자리에 있으면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의의와 평가]
윤두수는 1587년(선조 20) 6월에 왜적이 남쪽 지방을 침범한 사건을 다스리기 위하여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내려왔다. 관찰사로 지역을 순시하는 중에 전라도의 이름난 명소를 방문하여서 소회를 읊은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익산 미륵사에서 김 상사 득지, 송 어사 상현의 시에 차운하다」도 비슷한 과정으로 지어졌으며, 16세기 말에 미륵사가 존재하였음을 증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