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451
한자 李秉岐先生生家
영어공식명칭 Brithplace of Scholar Lee Byeonggi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64-8[원수리 57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선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44년 - 이병기선생생가 건립 추정
건립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이병기선생생가 승운정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73년 6월 23일연표보기 - 이병기선생생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4년 - 이병기선생생가 안채 및 사랑채 보수, 곳간채와 대문 복원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9년 - 이병기선생생가 실측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이병기선생생가 전라북도 기념물 재지정
현 소재지 이병기선생생가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64-8[원수리 573]지도보기
성격 가옥
양식 초가집
정면 칸수 6.5칸
측면 칸수 2칸
관리자 윤옥병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 있는 시조 시인 이병기의 생가.

[개설]

가람 이병기(李秉岐)[1891~1968]는 국문학자이자 우리나라의 20세기 시조 중흥에 기여한 시조시인이다. 이병기는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여 한글 운동을 주도하였고,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이병기선생생가이병기가 태어나고 말년에 살았던 집으로 안채, 사랑채, 고방채, 승운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승운정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조선 후기에 지은 집으로 양반집의 배치를 지니고 있다.

[위치]

이병기선생생가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금마에서 여산 방향으로 국도1호선를 가다가 원수저수지 앞에서 오른쪽 가람로로 진입한 후 신막마을 네거리에서 좌회전하여 650m 정도 들어가면 나온다. 이병기선생생가 옆에는 가람문학관이 있다.

[변천]

이병기선생생가는 1844년 이병기의 할아버지가 혼인을 하면서 충청남도 연산에서 전라북도 익산으로 내려와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1906년 작은 정자인 승운정을 건립하였다. 본래 초가였으나 새마을운동 때 시멘트 기와로 개량하였다. 1984년 안채와 사랑채를 보수하고, 고방채(庫房채)를 복원하였으며, 대문과 헛간을 사랑채와 연결하여 복원하였다. 이후 초가로 환원하여 지속적으로 보수하고 있다. 고방채 뒤쪽에는 행랑채와 외딴채도 있었으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형태]

이병기선생생가는 안채, 사랑채, 고방채, 승운정 등 4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양반집의 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다듬지 않은 자연 재료를 사용하여 소박한 느낌을 준다. 사랑채는 정면 6.5칸, 측면 2칸 규모의 일자집으로 방과 부엌, 문간, 헛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우재(守愚齋)’란 편액이 있는 2칸 방은 이병기가 기거하던 방이며, 부엌 칸을 건너 ‘진수당(鎭壽堂)’이란 편액이 달려 있는 끝 방은 서재로 사용하던 방이다. 부엌이 양쪽 방 사이에 있는 것은 난방의 효율성을 고려한 것이다. 안채는 ‘ㄱ’자 집으로 큰방 앞에 부엌이 있으며 대청과 건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뒤쪽에는 장독대와 광, 헛간, 화장실로 구성된 고방채가 있다. 승운정은 이병기선생생가에 딸린 1칸 규모의 작은 정자로 앞에는 연못을 조성하여 이병기가 휴식하고 풍경을 감상하던 곳이다.

[현황]

이병기선생생가는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집 뒤쪽에는 이병기의 묘소가 있으며, 이병기 생가의 탱자나무는 2001년 12월 27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생가 옆에는 가람문학관과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병기선생생가는 우리나라 현대 시조의 아버지라 평가받는 가람 이병기가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집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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