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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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蘇世讓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Soseyang Memorial Ston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산3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양은용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86년 - 소세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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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62년 - 소세양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564년 - 소세양신도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1월 9일 - 소세양신도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소세양신도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소세양신도비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산33 |
성격 | 비석 |
양식 | 장방형 기단 위에 옥개형 이수 |
관련 인물 | 소세양(蘇世讓)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96㎝[기단 대석 가로]|112㎝[기단 대석 세로]|90㎝[기단 대석 높이]|218㎝[비신 높이]|103㎝[비신 너비]|25㎝[비신 두께]|128㎝[이수 가로]|77㎝[이수 세로]|43㎝[이수 두께] |
소유자 | 진주소씨 익산회종회 |
관리자 | 진주소씨 익산회종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비석.
[개설]
소세양(蘇世讓)[1486~1562]은 조선 전기의 문인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퇴재(退齋)·퇴휴당(退休堂),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소자파(蘇自坡)이고, 어머니는 개성왕씨(開城王氏) 왕석주(王碩珠)의 딸이다.
1504년 진사시에 급제하였고 1509년 식년 문과에 을과 급제하였다. 수찬에 재직할 때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복위를 건의하여 현릉(顯陵)에 이장하게 하였다. 1521년 영접사 이행의 종사관으로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였고, 이어 왕자사부가 되었다.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하던 중 1530년 왜구에 대한 방비를 허술히 하였다고 하여 파직되었다. 1533년 지중추부사가 되어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37년 형조판서·호조판서·병조판서·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다. 1545년 윤임 일파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였다가 명종 즉위 후 을사사화로 윤임 일파가 물러나자 다시 기용되어 좌찬성을 지내다가 사직한 뒤 고향 익산에 은거하였다. 소세양은 사망한 뒤 익산 화암서원에 배향되었고, 문집으로 『양곡집(陽谷集)』이 있다.
[건립 경위]
소세양신도비는 비문에 ‘嘉靖四十三年(가정43년)’이라고 새겨져 있어 소세양신도비가 소세양이 죽은 2년 후인 1564년(명종 19)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진주소씨는 익산의 호족으로, 소세양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소세양신도비 건립을 추진하였다.
[위치]
소세양신도비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산33의 진주소씨 문중 묘역에 있다.
[형태]
소세양신도비는 화강암으로 제작된 석비로, 기단, 비신, 이수로 이루어진 비석의 기본적인 구성이 잘 갖추어져 있다. 기단 대석은 가로 196㎝, 세로 112㎝, 높이 90㎝에 국화문과 연화문을 새겼고, 비신은 높이 218㎝, 너비 103㎝, 두께 25㎝에 비문을 새겼으며, 이수는 가로 128㎝, 세로 77㎝, 두께 43㎝의 화강암에 용을 조각하였다.
[금석문]
소세양신도비 비제는 ‘좌찬성소공신도비명(左贊成蘇公神道碑銘)’이다. 금석문을 살펴보면, “강녕군(江寧君) 홍섬(洪暹)이 글을 짓고, 가선대부(嘉善大夫) 경기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京畿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 심전(沈銓)이 전액(篆額)을 하였다.”라고 밝히고 있으며, 소세양이 “칠팔 세에 학문을 좋아하여 나날이 진취하여 스승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고, 시구(詩句)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필법은 송설체(松雪體)를 익혔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특히 문종(文宗)[재위 1450~1452]의 부인인 현덕왕후의 현릉 이장 및 복권(復權)과 관련하여 신하들이나 유림들이 주저하던 세태에도 불구하고 “공이 경연(經筵)에서 그 말을 꺼냈는데 말하는 기상이 감정이 복받치고 격앙하니 좌우에서 두려워하며 듣다가, 대간(臺諫)과 시종(侍從)이 함께 권하니 오래 지나서 임금의 허락을 얻어서 현릉을 이장하여 종묘에 모시니 당시의 여론이 훌륭하게 여겼다.”라고 소세양의 업적과 기상을 칭송하고 있다.
[현황]
소세양신도비는 보존 상태가 전반적으로 양호하지만, 기단석의 이수는 파손되어 교체하였다. 현재 진주소씨 익산회종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1999년 1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소세양신도비는 비석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구성인 기단, 비신, 이수가 잘 갖추어져 있어 비석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며, 조각과 글씨의 서체가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 이전 건립되어 현재 익산에 남아 있는 비석 중에서는 조성 시기가 빠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