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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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望慕堂 |
영어공식명칭 | Mangmodang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장중길 105-8[광암리 3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선호 |
건립 시기/일시 | 1605년 - 망모당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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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704년 - 망모당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3년 - 망모당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9년 12월 27일 - 망모당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5년 - 망모당 지붕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9년 - 망모당 문짝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7년 - 망모당 기단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11년 - 망모당 해체 보수, 담장 및 조경 공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4년 - 망모당 실측 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망모당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망모당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장중길 105-8[광암리 356] |
성격 | 추모 정자 |
양식 | 조선 후기 익공 양식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진천송씨 충숙공파 우산종중 |
관리자 | 송재규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개설]
조선 시대 문신으로 병조참판을 지낸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耉)[1556~1620]가 아버지의 상을 당한 뒤 아버지가 묻힌 우산을 바라보면서 추모하기 위하여 1605년 세운 정자이다. ‘망모당’이란 편액은 중국 명나라의 명필 주지번(朱之蕃)이 쓴 것이다.
송영구는 1593년 서장관으로 정철을 따라 명나라에 갔는데, 이때 주지번을 만나 과거 시험을 보는 요령을 알려주고 책도 선물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2년 후 주지번은 장원 급제를 하였고, 1606년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왔을 때 자신의 은인이자 스승으로 여긴 송영구에게 ‘망모당’이란 편액을 써 주었다고 한다.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는 송영구의 재실인 우산정사가 있으며, 진천송씨 묘역 입구에는 송영구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위치]
전라북도 익산에서 호남고속도로 익산 톨게이트 방향으로 지방도722호선를 따라가다 보면 보석박물관에 못 미쳐 용남삼거리가 나온다. 용남삼거리에서 광암리 방향으로 우회전한 후 장중리마을회관 방향의 좁은 길로 들어서면 망모당이 나온다.
[변천]
망모당은 1605년 표옹 송영구가 창건한 후 1704년 종손이 서쪽으로 옮기면서 대들보를 고쳤다. 1903년 옛 부재를 최대한 활용하여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1995년 지붕을 보수하고, 1999년 문짝을 보수하고, 2007년 기단을 보수하였다. 여러 차례 수리를 한 뒤 2011년 해체 보수하였으며 담장 및 조경 공사를 하였다.
[형태]
망모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정자이다. 바닥에는 모두 마루를 깔았는데 정면에서 볼 때 오른쪽 1칸은 방으로 구성하였다. 정면은 난간만 설치하고 개방하였으며, 측면과 배면은 벽을 치고 바라지창을 내었다. 기단은 경사지를 따라 조성하였는데, 누정의 멋을 내기 위하여 전면부 기단을 낮추고 높은 주춧돌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반듯한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는데 앞에서 두 번째 기둥 열에는 원형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 위에 공포는 초익공 형식인데 조각 수법이 우수하다.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부재인 창방을 끼우지 않고 조각한 첨차와 소로를 놓아 장여와 주심도리를 받치도록 하였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팔자(八字)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며 단청은 하지 않았다.
[현황]
망모당은 장암마을의 뒤쪽 언덕에 있으며 한식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망모당 앞쪽에는 조망이 트여 있으며 왕궁천이 흐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망모당은 송영구가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하여 집의 후원에 지은 정자로 건립 연대가 비교적 빠르며, 조선 후기의 건축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1979년 12월 27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