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418
한자 益山彌勒寺址幢竿支柱
영어공식명칭 Flagpole Supports of Iksan Mireuksa Temple Site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신라
집필자 최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236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6년 4월 24일~5월 11일 -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 보물 재지정
현 소재지 미륵사지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 지도보기
성격 당간지주
크기(높이,길이,둘레) 3.95m[높이]
소유자 국유
관리자 익산시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미륵사지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 시대 당간지주.

[개설]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益山彌勒寺址幢竿支柱)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미륵사지에 있는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는 당간을 세운 상태로 고정하기 좌우로 세운 지주이다. 당이란 사원의 마당이나 문 앞에 꽃는 기당(旗幢)의 하나로, 기도나 법회 등 사원의 공식적 행사가 개최될 때 당간 꼭대기에 당을 매달았다. 통일신라 직후에 등장하여 여러 종류의 당간지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전국 사찰에서 가람 구성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법회 시 모든 신도들이 부처와 대면하고 예배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익산 미륵사지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1기가 아닌 2기의 당간지주가 89m 간격으로 동서 방향으로 세워졌다.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3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미륵사는 3원 병렬식(三院竝列式) 가람이다. 서원·중원·동원의 남쪽에는 각각 중문이라 부르는 입구가 있다.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배치된 3개의 중문들은 백제 미륵사 건축물의 남쪽 경계선이기도 하다. 통일신라 시기에 중문의 남쪽으로 동쪽과 서쪽에 당간지주 2기를 새로 설치하였다. 그리고 당간지주를 감싸듯 ‘⊔’자 모양의 남회랑을 추가로 건설하였다.

[위치]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 안에 있다. 서쪽 당간지주는 서원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부터 64m 남쪽에 있다.

[형태]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의 높이는 각각 3.95m이며 2기의 간격은 89m이다. 지주의 안쪽 면에는 장식이 없다. 당간지주의 앞쪽과 뒤쪽 그리고 바깥쪽 일부분에는 폭 약 12㎝의 윤곽 띠를 표현하였다. 모서리 부분은 둥글게 깎았다. 또 외면 중앙부에는 5㎝ 폭의 돌기 띠 1조를 양각하였다. 지주 정상부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내려가며 원호를 그린다. 원호 가운데에는 1단의 굴곡이 있다.

서쪽 당간지주는 편평한 사각형의 돌로 지대석을 깔고, 위에 기단을 설치한 구조이다. 기단부는 2매의 장대석으로 조립하였다. 면석부에는 앞뒷면에 각 세 곳, 옆면에 각 두 곳의 안상을 장식하였는데 통일신라의 전형적 조각 기법이다. 기단 위에는 받침을 마련하여 양쪽의 지주와 당간을 받쳤다. 간대의 크기는 가로 46.5㎝, 세로 68㎝, 높이는 21.8㎝이다. 앞면과 뒷면을 3단으로 구분하고 마치 연꽃잎을 표현하려는 듯 세로 방향으로 다섯 번의 굴곡을 주었다. 간대의 윗면 중앙부에는 원좌(圓座) 대신 지름 18㎝의 원공(圓孔)을 파서 당간을 끼울 수 있도록 하였다. 지주석 아랫부분에서 83㎝, 143㎝ 높이에는 깊이 11㎝인 구멍이 파여 있다.

동쪽 당간지주의 지대석과 기단부 일부는 파괴되었다. 기단 남쪽 지하에서 팔각(八角)의 간주석편이 2점이 출토되었다. 국립박물관에도 이미 수습한 팔각 간주석 조각 6점이 소장되어 있다. 간주석 조각을 원래 형태로 복원하면 기둥의 높이는 약 11m 이상이 된다.

[현황]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남북국 시대에 추가로 건설된 사역 남쪽 남회랑지 안에 서탑과 동탑의 남북 축선에 맞추어 당간지주 2기가 있다. 서탑 및 동탑과의 거리는 약 65m이다. 미륵사지 가람으로 진입하는 중원 중문의 앞쪽을 중심축으로 삼았을 때 동서 대칭을 이룬다.

[의의와 평가]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백제 후기[7세기 전반]에 창건된 미륵사가 삼국통일 이후 남북국 시대에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원이었으며 불교 행사 때 많은 신도들이 운집하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이다. 대체적으로 장식이 적으며 단정한 형태여서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제59호]와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등이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가장 비슷한 형태로 평가받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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