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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정에 올라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2097
한자 高士亭-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미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78년 - 고사정 건립
배경 지역 고사정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 지도보기
성격 칠언시
작가 임기락(林驥洛)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에 있는 고사정에 올라서 임기락이 읊은 한시.

[개설]

한시 「고사정에 올라」의 작가 임기락(林驥洛)의 본관은 평택, 호는 묵와(黙窩)이다.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예이며, 방은(芳隱) 임호응(林鎬應)[1870~?]의 아들이다. 임기락의 생몰 연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의 아버지 임호응의 『방은유고(芳隱遺稿)』에 아들 임기락과 손자가 1969년경에 문집을 간행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근현대에 활동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버지 임호응이 화순 출신이고, 이 시 외에 임기락의 고사정 차운시도 있어 화순에서 활동한 인물임도 추측할 수 있다.

시의 배경인 고사정은 1678년(숙종 4)에 최후헌(崔後憲)이 건립하였다. 최후헌은 임진의병장 최경장의 손자이며 최홍우의 아들이다. 최홍우임진왜란 때 의병에 가담하여 금산 무주 개녕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훗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여 ‘고사(高士)’란 칭송을 들었고, 인조로부터 ‘남주고사(南州高士)’의 호를 받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최후헌고사정을 세운 것이다. 현판은 당대의 유명 서예가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가 썼으며, ‘고사정 팔경시(八景詩)’가 누각 안에 걸려 있다.

[구성]

시의 앞부분에 고사정의 명성이 대단함을 이야기하였다. 이어 고사정의 고요한 풍경을 묘사한 후, 여러 사람이 모여 시를 쓰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내용]

심진객장자동서(尋眞客杖自東西)[나그네 절경 찾아 동서로 헤매노니]

고사정명가부저(高士亭名價不底)[고사정의 명성 또한 대단하구나]

정의부래리탁세(正義扶來離濁世)[정의를 다하여 혼탁한 세상 멀리하고]

루진세거침청계(陋塵洗去枕淸溪)[맑은 시내 베고 누워 인생시비 씻고 싶네]

상전점로청산염(霜前漸露靑山染)[서리 앞에 푸른 산은 점점이 물드는데]

운외원문백안제(雲外遠聞白鴈啼)[구름 밖 멀리서 흰기러기 소리 들려온다]

참석무위개유신(參席無違皆有信)[모두가 신의로써 어김없이 참석하여]

공련시축양두제(共連詩軸讓頭題)[시축에 모여앉아 먼저 쓰기 사양하네]

[특징]

저(底), 계(溪), 제(啼), 제(題)의 운자를 사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시축에 모여앉아 서로 먼저 쓰기를 사양한다는 마지막 구절을 통해, 근·현대에도 고사정에 올라 여러 사람들이 모여 시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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