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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993
한자 和順道莊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집필자 이옥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2년 - 화순 도장리 밭노래 남도 문화제 출전 우수상 수상
채록 시기/일시 1993년 - 화순 도장리 밭노래 강동원이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3년 - 화순 도장리 밭노래 『화순의 민요』에 수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8년 - 화순 도장리 밭노래 남도 문화제 최우수상 수상
문화재 지정 일시 2003년연표보기 - 화순 도장리 밭노래 전라남도 화순군 향토 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화순 도장리 밭노래 『화순 우봉리 도장리의 옛 노래와 민속 문화』에 수록
문화재 지정 일시 2013년 8월 5일연표보기 - 화순 도장리 밭노래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화순 도장리 밭노래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재지정
채록지 도장 마을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지도보기
가창권역 도장 마을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성격 밭매기를 할 때나 길쌈을 할 때 부르는 노래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부녀자들이 밭을 매거나 길쌈을 할 때 부르는 노래.

[개설]

화순 도장리 밭노래도장리 부녀자들이 밭을 매거나 길쌈을 할 대 부르는 노래이다. 도장리는 1980년대 초반까지는 목화 농사가 가장 중요한 생업이었다. 목화 농사는 일 년 동안 밭을 다섯 번 매야 할 정도로 부녀자들의 일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도장 마을 부녀자들은 목화 농사를 지을 때 밭노래를 부르며 고단함과 지루함을 이겨냈다. 목화솜에서 뽑아낸 실로 길쌈을 해서 미영베[목화베]를 짤 때에도 노래를 불렀다.

민요 연행자들 중에서 고 김아님과 나순례는 많은 민요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소리꾼으로서의 자질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현재 밭노래 마을 영농 조합 법인에서 운영하는 농산물 가공 공장 자리가 예전에는 마을 회관이었는데 그곳에서 주민들이 함께 모여 민요를 부르고 배웠다. 마을 사람들의 활동이 1989년에 『빛고을 신문』에 기사화되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1992년 남도 문화제에 참가하여 민요 부분 우수상을 수상한 이후로 화순 도장리 밭노래에 대한 언론과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다.

[채록/수집 상황]

1980년대 후반 농촌의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귀향한 김성인은 민속과 민요의 중요성을 절감하였다. 1985년 도장리 농우회를 조직하여 농우회 회원들과 촌로들을 찾아다니며 민요를 녹음하고 채록하였다. 화순 도장리 밭노래는 1993년 강동원의 『화순군의 민요』에 일부 작품이 수록되었고, 2010년 화순군과 전남 대학교 산학 협력단에서 발행한 『화순 우봉리 도장리의 옛 노래와 민속 문화』에 여러 작품이 수록되었다.

[구성 및 형식]

밭매기나 길쌈은 작업의 통일성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노래든지 자유롭게 부를 수 있었다. 음악적으로 정해진 틀이 없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내용]

도암면 도장리의 부녀자들은 시집살이의 어려움, 남편에 대한 원망, 사랑에 대한 희구, 부모에 대한 그리움, 자식들에 대한 기대를 노래 속에 진솔하게 담아냈다. 이야기는 거짓말, 노래는 참말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곧 그들이 살아온 삶이었고 그들의 마음이었다.

1. 밭매는 노래

아람 차고 장찬 밭이 묏과 같이 짓었으니/ 우리 서로 밭을 매세/ 못다 맬 밭 다 맬라다/ 잊었구야 잊었구야 금봉채를 잊었구야

2. 사모곡

한재 너머 환각구야 두재 너머 지충개야/ 겉잎 같은 울어머니 속잎 같은 나를 두고/ 임에 정이 좋자 한들 자석에 정리를 띠고 강가/ 어매 어매 우리 어매 요내 나는 죽어지면/ 잔등 잔등 넘어가서 양지발로 묻어놓고/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씰어 주소

3. 시집살이 노래

시집가는 사흘 만에/ 양동우도 깨었다소 양가매도 깨었다소/ 시금 시금 시아버니 썩 나섬서/ 아강 아강 며늘아강/ 활장같이 굽은 질로 활활치고 너어 가서/ 양동우도 물오니라 양가매도 물오니라/ 시금 시금 시어마니 썩 나섬서/ 아강 아강 미늘아강/ 활장같이 굽은 질로 활 쏜댁기 돌아가서/ 양동우도 물오니라 양가매도 물오니라/ 째까막헌 시누아씨 썩 나섬서/ 성님 성님 우리 성님/ 활장같이 굽은 질로 어서 배삐 돌아가서/ 양동우도 물오시오 양가매도 물오시오/ 시아버니 들오시오 시어머니 들오시오 시누아씨도 들오시오/ 바늘같은 요내 몸이 황소같이 헐었으니/ 본살 같이 해여주면 양동우도 물오리다 양가매도 물오리다

4. 공공 다래

다래 한나를 숭것더니 다래 둘이 열렸고야/ 공공 다래[후렴]/ 다래 둘을 숭것더니 다래 싯이 열렸고야/ 공공 다래/ 다래 싯을 숭것더니 다래 닛이 열렸고야/ 공공 다래/ 다래 닛을 숭것더니 다래 다섯이 열렸고야/ 공공 다래/ 다래 다섯을 숭것더니 다래 여섯이 열렸고야/ 공공 다래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낮에 밭일을 하거나 밤에 길쌈을 할 때 노래를 부르다 보면 지루함도 해소되고 여러 걱정으로 고단한 마음이 풀어졌다고 한다.

[현황]

화순 도장리 밭노래는 해마다 열리는 ‘화순 운주 문화 축제’에 빠지지 않고 출연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도장골 밭노래 한마당 축제에서도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근에 있는 천태 초등학교에 지역 문화 교육의 일환으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밭노래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주민들의 고령화로 인해 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밭노래를 지켜가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의지는 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8월 5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도장 밭노래는 밭노래이자 시집살이 노래이면서 여성들의 한을 풀어내는 소리였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세월의 흐름 속으로 흘려보낸 민요를 도장리에서는 마을 축제 등을 통해 현재까지 전승해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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