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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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同福敎會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천변길 23-2[천변리 116]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성은 |
설립 시기/일시 | 1907년 - 칠전리 교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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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35년 1월 15일 - 칠전리 교회에서 칠정리 교회로 개칭 |
해체 시기/일시 | 1942년 4월 30일 - 칠정리 교회 폐지안 제출 |
개칭 시기/일시 | 1945년 8월 - 칠정리 교회에서 동복 교회로 개칭 |
이전 시기/일시 | 1981년 - 동복 교회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천변리 116으로 이전 |
최초 설립지 | 칠전리 교회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군 읍내면 칠전리 715 |
주소 변경 이력 | 칠정리 교회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칠정리 715 |
현 소재지 | 동복 교회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천변길 23-2[천변리 116] |
성격 | 개신 교회 |
설립자 | 배유지|오원 |
전화 | 061-372-2153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천변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변천]
1907년 배유지, 오원 선교사의 전도 활동으로 먼저 몇 명이 믿었고, 신자가 늘어나 예배당을 신축하여 동복군 읍내면 칠전리에 칠전리 교회를 세웠다. 1912년 남평과 동복 순회 구역은 노라복 선교사가 책임자였다. 1913년 동복 교회와 그 일대가 노라복 선교사 순회 구역에서 뉴랜드[남대리] 목사의 순회 구역으로 변경되었다. 1913년 오태욱 장로가 장립되어 당회가 성립되었으나 오태욱 장로가 나주시 덕곡리로 이사함으로 당회가 폐지되었다. 1914년에는 동복읍 교회라 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19년 교인들이 3·1 운동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교회가 3년간 핍박을 받다가 그 후에 다시 흥왕하게 되었다. 1925년 11월 16일 동복 예배당에 여자 초등 야학을 설립하여 연령이 넘었거나 가세가 빈궁하여 학교에 가지 못한 일반 여자를 위하여 가르쳤다. 1933년 10월 19일 조선 예수교 장로회 전남 노회 유지 재단으로 소유권 등기가 완료되었다.
1935년 1월 15일 칠전리 교회를 칠정리 교회로 개칭하였다. 1942년 3월 이전까지 노라복 선교사의 선교 구역[칠정리 교회, 호암 교회, 석고리 교회]에 속했다가 1942년 3월부터 목포부 양동 127번지 신촌 연세가 당회장이 되었다. 1942년 4월 30일 칠정리 주서집이 교회 폐지안을 제출하였고 1944년 4월 17일 칠정리 교회[칠정리 715]를 폐지했다. 1945년 광복 이후 동복 교회가 재개되었고 1949년 빨치산들이 총을 쏘며 출몰하는 가운데 유화례 선교사는 동복 교회에서 일주일 간 부흥 집회를 인도하였다.
1950년 10월 20일 6·25 전쟁으로 함석지붕 교회가 전소되어 문서들이 소실되었다. 1981년 9월 22일 동복 국민학교 교지 확장 문제로 교회 자리와 칠정리 북쪽에 있는 학교답과 천변리 116번지 오씨 문중답을 3자가 맞교환하여 교회터는 학교로, 칠정리 학교 실습답은 오씨 문중으로, 천변리 오씨 문중답은 교회로 주었다. 예배당을 신축한 후 대한 예수교 장로회 동복 교회로 소유권을 등기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예배는 주일 낮 11시와 오후 2시에 있다. 수요일마다 밤 7시 30분에 열리며, 새벽 기도회가 오전 4시 30분에 있으며, 오후 1시에 유·초등부, 오전 11시에 중·고등부 예배 등이 있다. 해외 협력 선교는 조규태 선교사가 맡아 남아프리카를 후원하고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3개 구역으로 편제되었고 담임목사 1명, 시무 장로 1명, 시무 권사 1명, 안수 집사 2명, 명예 권사 5명, 교인 30여 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