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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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社會運動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송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지역 사회의 변혁과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집단적으로 전개되는 제반의 행동.
[사회 운동의 개념]
사회 운동은 기존의 규범이나 가치의 유형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신념을 공유한 개인이나 집단이 대안적인 규범이나 가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집합적 행동이다. 특히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전개되는 지역 사회 운동은 일정한 공간적 구역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역 사회를 둘러싼 경제적·사회적 조건들을 극복하고 지역 주민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삶의 질 향상과 자아실현을 고양시킬 수 있는 공동체적 공간을 구축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 사회 운동은 지역 사회를 근거로 지역 주민들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생활상의 문제를 비롯한 제반의 문제를 집합적 실천 활동을 통해 해결해 가는 과정이다.
[화순 지역의 민주화 운동]
화순군은 전통적인 농촌 지역이었지만 근대화 과정에 광주광역시의 위성 도시적 성격을 갖게 되면서 사회 운동에서도 상당 부분 이러한 특성이 반영되고 있다. 광주광역시가 5·18 민주화 운동과 1987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면, 화순 지역은 광주에서 전개된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화순 지역민들이 5·18 민주화 운동에 상당 부분 참여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화순군과 광주광역시가 동일한 생활권으로 묶여 있다는 점에서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화순 지역에서의 투쟁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발포로 무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때 시민군이 광주 이외의 지역에서 최초로 무기를 획득한 곳이 화순군이었다. 또한 5·18 민주화 운동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던 화약을 입수했던 일도 화순군 출신의 시민군이 화순군에서 획득했다는 점을 통해서 볼 때 화순군이 광주의 근거리 지역에 위치하면서 사회 운동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는 5·18 민주화 운동의 표지석과 안내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화순군에는 현재 10개의 표지석과 3개의 안내판이 있는데, 모두 5월 21~22일 양일에 걸쳐 발생한 사건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광주 인근 지역으로서 화순군의 지역적인 특색을 보여준다.
[화순 지역 사회 운동의 특징]
화순 지역의 사회 운동은 광주광역시의 인접 지역이라는 지리적 근접성과 동일 생활권이라는 이유로 인하여 사회 운동이 발전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즉 화순 지역은 지역 사회 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 사회 운동은 이를 주도하는 시민 사회 단체의 활동 역량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화순 지역의 경우 시민 사회 단체의 숫자도 적은 편이고 활동도 크지 않은 상태여서 지역 사회 운동은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쟁투(爭鬪)적인 사회 운동은 주로 주창[advocacy] 활동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 기구]에 의해 상당 부분이 수행되는데 화순군의 경우 『화순 군지』[2012]에 소개된 단체를 분석한 결과 주창 활동 NGO는 전무한 상황이다. 또한 지방 선거를 둘러싼 갈등도 지역 사회 운동의 활성화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화순군의 경우 지방 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자치 단체장이 선거법 위반이나 비리에 연루되어 중도 사퇴하면서 보궐 선거가 계속되었고, 선거를 둘러싼 갈등과 분열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지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시민 사회 단체의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지역 사회 운동의 형성과 발전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여 그나마도 열악한 지역 사회 운동 역량이 제대로 발현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