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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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獻公實記 |
영어공식명칭 | Munheongongsilgi |
이칭/별칭 | 『문헌공선생실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영숙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인 일두 정여창의 문집.
[저자]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수옹(睡翁), 시호는 문헌(文獻),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함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 문하에서 배웠다. 1490년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시강원 설서를 지냈다. 1498년에 무오사화로 말미암아 함경도 종성(鍾城)으로 유배되었으며, 1504년 생을 마감한 후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剖棺斬屍)[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나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 칼로 베거나 목을 자르는 극형]되었다. 중종 때 우의정에 증직(贈職)되었다. 경상남도 함양 남계서원(灆溪書院), 합천 이연서원(伊淵書院), 거창 도산서원(道山書院)과 경상북도 상주 도남서원(道南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간행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1635년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537]의 발문, 1743년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가 지은 중간본(重刊本) 발문이 있고 권두의 간기(刊記)에 ‘계해 중추 중간 남계서원 장판(癸亥仲秋重刊灆溪書院藏板)’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재가 발문을 지은 1743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문헌공실기(文獻公實記)』는 1책[77장]의 목판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에 전체 크기는 30.2×21.2㎝, 반곽(半郭)은 21.7×17.1㎝이다. 계선(界線)이 있고, 10행 20자이며, 주(註) 쌍행(雙行)이다. 상하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가 있다.
[구성/내용]
『문헌공실기』는 세계원류(世系源流), 사실대략(事實大略), 선생시문(先生詩文), 비장문자(碑狀文字), 사화수말(史禍首末), 포증사전(褒贈祀典), 제현찬술(諸賢讚述), 제현시장(諸賢詩章), 선생유묵(先生遺墨) 순으로 글이 실려 있다. 세계원류는 정여창 집안 세계(世系) 기록이다. 사실대략은 정여창 연보가 소략하게 실려 있다. 선생시문에는 정여창의 시 「악양(岳陽)」, 「사직상소(辭職上疏)」, 뇌계(㵢溪) 유호인(兪好仁)의 제문이 실려 있다. 비장문자에는 정여창의 행장 3본(本)이 실려 있다. 사화수말에는 무오사화로 인하여 종성(鍾城)으로 유배를 가게 된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포증사전은 제현들이 선생의 문묘종사를 추진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으로, 제현들이 정여창에 대하여 기록한 글을 수집한 것이다. 제현시장은 정여창과 관련되어 제현들이 지은 글을 실었다. 선생유묵은 정여창이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글로, 초서 서찰이 실려 있다. 부록에는 사제문(賜祭文), 「어제화성향교봉안문(御製華城鄕校奉安文)」, 「안음현광풍루기(安陰縣光風樓記)」, 「남계서원묘정비(灆溪書院廟庭碑)」 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정여창의 유문은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다. 이에 따라서 『문헌공실기』는 사료 가치가 있다. 다만 『일두선생유집(一蠹先生遺集)』과 수록 내용이 비슷한 점이 있어 두 문집에 대한 출입의 고증을 통하여 활용하는 것이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