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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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禛盧士豫盧士尙孝子旌閭 |
이칭/별칭 | 노씨삼인지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131-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현열 |
건립 시기/일시 | 1699년 - 노사상 효자 정려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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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723년 - 노사예 효자 정려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723년 - 노진 효자 정려비 건립 |
현 소재지 | 노진·노사예·노사상 효자 정려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131-4 |
성격 | 정려 |
양식 | 솟을대문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풍천노씨 삼인의 정려.
[위치]
함양군 지곡면 오평마을과 덕암마을의 중간지점인 함양로 변에 있다.
[변천]
노진(盧禛)은 효성이 지극하여 1585년(선조 18)에 정려가 내려지고 1723년(경종 3)에 정려비가 세워졌다. 노진의 정려는 처음에는 지곡면 창촌 동편에 있었으며 이후에 개평리 오평으로 이건하였다.
노사예(盧士豫)는 13세에 아버지 상을 당하였고 죽만 마시며 시묘하였다. 지극한 효심으로 1612년(광해군 4)에 정려가 내려졌으며, 정려비는 노진의 정려비와 같이 1723년에 세워졌다.
노사상(盧士尙)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례를 극진히 하였고 어머니를 효성으로 모시었다. 1621년(광해군 13)에 정려가 내려졌으며, 정려비는 1699년(숙종 25)에 건립되었다.
[형태]
정려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기와집이다. 솟을대문이 확장된 형태와 유사하다. 정려비는 정려각 안에 있다.
[현황]
2018년 기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매우 양호한 상태로 보호 및 관리되고 있다. 정려 입구 좌측에는 안내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입구 좌우로는 나무를 심어 길을 내었다. 정려 주변에는 담장을 둘렀다. 각 정려비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효자이조판서증시문효공노진지려(孝子吏曹判書贈諡文孝公盧禛之閭)」
「효자처사노사예지려(孝子處士盧士豫之閭)」
「효자생원처사상지려(孝子生員處士尙之閭)」
[의의와 평가]
함양군 내 정려 중에서도 비교적 양호하게 보호 및 관리되고 있는 정려이다. 도로변에 있어 과거 도로를 가늠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