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511
한자 咸陽學士樓
영어공식명칭 Hamyang Hagsalu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학사루길 4[운림리 31-1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지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79년 - 함양학사루, 함양군청 정문 앞으로 이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380년 - 함양학사루, 왜구의 침입으로 관아 등과 함께 소실
개축|증축 시기/일시 1692년 - 함양학사루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74년 2월 16일연표보기 - 함양학사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함양학사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재지 함양학사루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학사루길 4[운림리 31-15]지도보기
원소재지 함양학사루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고운로 43[운림리 27-1]지도보기
성격 건물
양식 팔작지붕 중층 누각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국유
관리자 함양군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중층 누각.

[위치]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1-15에 있다. 함양군청 정면 고운로와 학사로가 교차하는 남서쪽으로 주변에 우체국과 법원, 경찰서 등이 있다.

[변천]

신라시대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이 함양의 태수[당시 천령태수]로 재임할 때 자주 올랐다고 전해진다. 특히 성리학자로서 영남학파의 종조였던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이 함양군수로 재임할 때 학사루에 걸려 있던 유자광(柳子光)의 시를 철거시킨 것이 무오사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건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구전에는 최치원이 함양[천령]태수로 있을 때 건립하여 자주 올랐으므로 ‘학사루’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원래는 관아에 딸린 건물로서 객사가 있고 동쪽으로 제운루(齊雲樓), 서쪽으로 청상루(淸商樓), 남쪽으로 망악루(望嶽樓)를 두었다고 한다.

1380년(우왕 6)에 왜구의 노략질에 의하여 관아와 함께 전소되었다가 1692년(숙종 18)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함양국민학교 교사로 쓰여 오다가 1963년부터 군립도서관으로 사용되었으며, 1978년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1-15로 이건하였다.

[형태]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자연석 초석 위에 잘 다듬은 원형의 누하주를 세우고 그 위에 마루를 깔고 계자난간을 둘렀다. 공포 형식은 1출목 2익공으로 첨차는 하부를 쌍S자로 초각(峭刻)하였으며 공포 사이에는 화반을 놓아 화려하게 꾸몄다. 상부가구는 대량과 종량을 둔 5량가로 대량은 위로 살짝 굽은 형태의 나무를 사용하였으며, 그 위로 동자주를 세우고 종량을 받았다. 처마는 부연을 둔 겹처마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출입은 중앙 칸에 계단을 시설하여 상부 마루로 오르는데, 마루는 우물마루로 기둥 사이를 장귀틀로 연결한 후 동귀틀을 끼우고 널판을 끼운 일반적인 형식이다.

[현황]

1978년에 함양국민학교에서 함양군청 정문 앞으로 이건하였다. 2015년에 단청을 새롭게 정비하였으며 문화재 주변의 관리 현황도 양호하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천연기념물 제407호인 함양 학사루 느티나무가 있다.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함양군을 대표하는 건물로 오랜 역사와 수많은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중수되고 난 이후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도 그 모습을 잃지 않았으며 최치원·김종직 등 유명한 인물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하겠다.

[참고문헌]
  • 『함양군사』 (함양군사편찬위원회, 2012)
  • 경상남도 문화재정보시스템(http://heritage.gyeongna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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