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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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陽敎授亭 |
영어공식명칭 | Hamyang Gyosujeong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함양로 2025[개평리 14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지환 |
건립 시기/일시 | 1398년 - 함양 교수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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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7월 20일 - 함양 교수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함양 교수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교수정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함양로 2025[개평리 143] |
성격 | 건물 |
양식 | 익공식 소로수장 홑처마 팔작지붕 중층누각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관리자 | 함안조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위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덕암마을로 진입하는 국도24호선 변에 인접해 있다.
[변천]
조승숙은 함안조씨로 고려개국공신이었던 시조 조정(趙鼎)의 11세 손이다. 1381년(우왕 7) 문과에 급제하 부여감무로 있던 중 조선 태조가 즉위하자 고향인 함양으로 낙향하였다. 이후 조정의 부름을 받지 않고 고향인 덕실에서 가까운 교수정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세월을 보냈다. 고려 멸망 후 조선이 건국되었음에도 끝까지 충절을 지킨 고려의 유신 72인을 두문동 72현이라 하였는데, 조승숙은 두문동 72현 중 한 명이었다.
조승숙이 1398년 건립한 이래 지금까지 개평리에 있다. 이후 조선 성종 때 조승숙의 충절을 기려 함양군 출신의 문장가 유호인에게 글을 짓게 하고 사제문을 내렸는데, ‘수양명월율리청풍(首陽明月栗里淸風)’이라는 여덟 자를 자연 암반 위에 새겨 거북 머리를 조각하고 그 위에 비를 세웠다. 교수정 앞에는 조승숙의 충직함과 굳은 절개가 어려 있는 고사리와 국화라는 뜻의 ‘미국(薇菊)’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형태]
낮은 누하주 위에 누상주를 세우고 상부가구를 세웠는데 뒤쪽에는 각 칸마다 방을 두었고 앞쪽으로는 마루를 시설하고 삼면을 계자난간으로 둘렀다. 오량가 초익공으로 소로수장으로 장식하였으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구성하였다.
함양 교수정 좌측으로 흘러가는 냇가 언덕 위에 노송에 둘러싸여 있다. 출입문 앞에는 교수대(敎授臺)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팔덕문(八德門)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다. 교수대 옆에는 조선 성종이 내린 사제문이 새겨진 거북머리 바위와 비석이 있다.
[현황]
함양 교수정 및 주변 석물과 건물 등이 잘 정비되어 관리되고 있다. 함양 교수정은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두문동 72현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진 조승숙이 건립한 정자로, 정자와 사제문비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